2014/06/04 트라우마와 가해자
오늘 동경은 어제에 이어 미친 듯이 확 뜨거워진 한여름 날씨가 되고 말았다. 오늘도 요동네 최고기온이 33도란다(정정, 35도였다고). 겨우, 고작 6월에 접어들었을 뿐인데, 7월 하순의 기온이라니… 어쩌라고… 그저께는 그래도 기온이 확 올랐다지만, 30도가 넘은 31도에 불과했다. 어쩌다가 기온이 확 오른 줄 알았다. 어제 오전에 집에서 일기예보를 검색했더니 30도라기에 그래도 지낼만 하다면서 있었더니, 30도 느낌이 아니다. 한여름에 하는 베란다에 물끼얻기를 했다. 몸이 축 늘어지는 게 절대로 30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시내에 외출을 해서 집에 돌아와서 일기예보를 봤더니, 세상에 33도였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 몸이 이상한 게 아니였어. 그런데, 아직 5월인 데 한여름 기온이 되면 어쩌라고, 이런 기온이 10월까지 갈 것이 아닌가. 한여름이 다섯 달이나 되 인간들이 살아남을까?
나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트라우마에 대처하기 위해서 메디테이션을 했었고, 확실히 그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치유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행동을 하진 못했다. 나에게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바라본다는 자체가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사실 트라우마를 바라보려고 해도 많은 기억을 잃고 있어서 혼자서는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치유를 향한 노력(창조적인 작업)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자신의 행위가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노력이었다는 걸 모르면서 하고 있었다. 작년에 트라우마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미친 듯한 창조적인 작업’이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5월 하순, 치바에서 돌아온 날,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시해야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용기가 안나서 읽지 못했던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책이 진실을 말하는 무서운 책이라는 걸 알았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가해자의)진실이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트라우마를 가지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피해 경험을 들어왔다. 그러나 자신이 피해자가 되어보니 남들의 경험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남들의 피해경험에 관해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도 알았다. 나의 고민과 피해경험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주위에서 보면 나는 부러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사치스러운 고민’이었고,, 가까운 사람들의 말은 오히려 가해자의 편을 들며 나를 더 고립시키고 상처 입혔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아주 힘든 일이라 천천히 읽어가고 있다. 그러나, 확신이 있다. 메디테이션을 받기 전과 후로 달라졌듯이, 이책을 읽기 전과 후로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의 침몰 사고와 그 대처 과정에 큰 상처를 입었다. 국가(정부)가 수많은 국민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국민적인 트라우마’가 되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유사이래, 국내뿐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기면서 한국을 알린 결정적인 일이 되었다. 대단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한류가 어쩌고, 삼성제품이 팔리는 것과 차원이 다른 ‘홍보’였다. 지금까지 북한 지도자에 비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한국 지도자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예는 드물었다. 그것도 한방에 해결했다. 무서운 실력이다.
그러나 불행중 다행인 것은 이번 사건이 결코 숨길 수 없는 ‘국민적인 트라우마’였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치유를 ‘국민적’으로 연대해서 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며 살아가야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은, 사건을 잊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도 아니다. ‘가해자’는 그냥 두면 다시 ‘가해’하니까, ‘가해자’들이 영향력 있는 지위에 있으면 안 된다. ‘가해자’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읽고 있는 책을 부분 번역해서 올린다. 내 트라우마를 치유해 가는 길이기도 하다.
원저는 Judith Lewis Herman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 a Division of Harper-Collins Publishers, Inc., New York, 1992이다.
지금 읽고 있는 일본어판 ジュディス・L・ハーマン著 中井久夫訳『心的外傷と回復』みすず書房 1996 1996에서,제1장 역사는 심적 외상을 반복적으로 잊어왔다의 부분( P4-7)을 번역한다.
*가해자에게 가담하기는 쉽다
-전략- 가해자편에 서는 것은 편하고 그렇게 되기가 쉽다. 가해자는, 제삼자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뿐이다. 가해자는, 보고, 들은, 그리고 나쁜 일을 말하기 싫은 만인이 가진 욕망에 호소한다. 그에 반해, 피해자는, 제삼자에게 고통의 무거운 짐을 같이 지어주길 바란다. 피해자는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같이 연대해 줄 것을, 기억할 것을 요구한다. 레오.아이팅거는 나치 강제 소용소의 생존자를 조사한 정신과 의사로서, 피해자와 제삼자 간에 생기는, 관심에 대한 잔혹한 갈등을 이렇게 기록했다.
*제삼자는 잊기를 원한다
“전쟁과 피해자는 사회가 잊고 싶은 것이다. 망각의 베일이 모든 고통스러운 것, 불쾌한 것들 위에 덥혀진다. 우리는 대립하는 두편이 대립하는 것이 보인다. 한쪽편에는 피해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반대편에는 아무리 잊기를 원하지만, 잘 잊을 수가 없는 사람들로, 잊으려하는 이유는 의식하지 못하는 일이 많지만 강력한 것이 있다. 이런 대조성은(중략) 어느 편에서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아주 약한 사람들은 (중략) 이런 침묵이, 대등하지 않은 대화의 패자 쪽에서 나올 수가 없다”.
*가해자는 교묘하게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든다
자신이 범한 죄의 설명책임에서 벗어나려고, 가해자는 잊기위해서 필요한 것은 가능한 한 뭐든지 한다. 비밀을 지키라고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은 가해자의 일차적인 방위선이다. 만약에, 비밀이 탄로나더라도, 가해자는 피해자의 증언의 신빙성에 대해 반론을 한다. 만약, 피해자의 입을 완전히 다물게 못했다면, 가해자는 아무도 그녀(피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한다. 그 목적을 위해서 그들은 당당하게 주장한다. 가장 후안무치한 부인에서 시작해서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합리화까지 쭉 늘어 논다.. 잔혹한 행위를 할 때마다 하는 변명의 내용은 듣기도 전에 알고 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다, 피해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과장해서 말하고 있다. 그녀(피해자)는 자신이 그런 일을 자초했다, 어쨌든 과거는 잊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라 어쩌고 저쩌고. 가해자가 권력자일수록, 현실에 맞게 바꿔서, 이렇다고 정하는 주도권은 크고, 그 논법이 통하고 만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안 들리고,, 잘려나가기 쉽다
가해자의 논법은 일대일로 듣고 있으면, 제삼자는 반론을 할 수없다. 제삼자를 응원하는 사회적 환경이 없으면, 제삼자는 모른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더하자면, 피해자가 사회에서 이상화된, 평가가 높은 사람일 경우라도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전쟁이든, 용사라는 병사를 포함한 일반병사들은 누구도 전쟁의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걸 열심히 주장한다. 원래 가치가 낮다는 사람(여성, 어린이)일 경우, 생애에 가장 외상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는 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현실적인 범위 밖이라는 걸 알았다고 해도 의외가 아니다. 그녀(피해자)가 체험한 것은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연구자는 이런 경향과 계속 싸워야 한다
심적 외상의 연구에는, 이런, 피해자의 발언의 신뢰성을 뒤집어엎어 피해자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려는 경향과 끊임없는 싸워야 할 필연성이 있다. 이 분야의 역사를 보면, 외상후장애를 보이는 환자는 존중받아 케어를 받아야 하는지, 무시해야 하는지, 정말로 피해자로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인지, 꾀병인지, 그녀(피해자)들의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진실이 아니라면 공상의 산물인지 악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이러한 것이 항상 침을 튀겨가며 논해진다. 심적 외상 현상을 기록한 문서의 양은 방대하나, 논쟁의 중심은 아직도 [이런 현상은 신뢰할 수 있는, 실제로 그러한 것인지 어떤지]라는 기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연구자도 백안시당하기 쉽다
외상후장애 환자만이 아니라, 그에 관한 연구자도, 그 발언의 신빙성이 반복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외상을 받은 환자에게 장시간, 친절하게 귀를 기울이는 임상가는 자주 동료에게 의심스럽다는 눈총을 받는다. “접촉 감염”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분야에 열중해서 일반적인 범위를 넘어 몰입한 조사자는 자주 전문가 동료에게 왕따를 당했다.
*피해자에게는 지속적인 서포트와 연대가 필요하다
외상을 받았다는 현실을 계속 의식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보호하고 피해자와 증인(목격자)을 연대시킬 수 있는 사회적 흐름이 필요하다. 개개의 구체적인 피해자에게, 그러한 사회적인 환경은 친구, 연인, 배우자, 가족과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좀 더 넓은 말하자면, 그런 사회는 약자가 발언을 할 수 있는 정치적인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진다.
*연구는 정치적인 입장과 거리를 둘 수가 없다
심적 외상의 체계적/조직적인 연구는, 즉, 정치적인 운동의 지원 여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실제로, 그런 연구를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수 있는지가 정치적인 문제다. 전쟁에 의한 심적 외상의 연구는, 청년이 전쟁에 의한 피해를 받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회적인 흐름에서 처음으로 바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운동이, 통상적인 침묵을 부인하는 사회적 과정에 저항해서, 환자와 연구자의 연대를 바르다고 할 수 있는 강함이 있어야 처음으로, 이 분야에 진보가 있을 수 있다. 인권을 옹호하는 강력한 정치적인 움직임이 부족한 곳에서는 [적극적으로 증언을 유지하는 과정]이 [적극적으로 잊어버리려는 과정]에 길을 양보하고 만다. 억압해서, 해리하고, 부인하는 현상은,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개인에게도 일어난다.(후략)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Trauma=트라우마는 ‘신체적 외상’과 ‘정신적 외상=심리적 외상=마음의 상처’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PTSD의Trauma는 ‘정신적 외상=마음의 상처로、마음의 상처=트라우마이다.
얼음이 얼었던 물가에 봄이 보였다. 땅에 떨어진 수많은 도토리가 싹을 피운 것을 보고 감동했다. 그냥 땅에 떨어져서 썩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추운 겨울을 지내 싹을 냈다는 것,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는 것 같았다. 씩씩하다 도토리...
6월 1일에 포스팅 했던 것을 다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