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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좋은 연구

2016/06/20 좋은 연구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맑게 개인 기온이 팍팍 올라가는 더운 날씨였다. 어젯밤에 비가 온 후라, 아침에 기온이 올라가면서 천연 찜질방이 된 느낌이 들었다. 날씨가 습하고 덥다가 저녁이 되어 습기가 더 많아지면서도 기온은 그다지 내려가지 않는다. 9시 가까운 지금도 26도란다. 아직 6월인데, 갑자기 한여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 처음으로 모기에 물려서 모기향도 꺼내서 피웠다.

어제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비즈공예 전시회에 다녀왔다. 비즈공예 전시회를 보고 나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러 갔다. 나에게는 정말로 드문 보통 아줌마들이 모여서 부담 없이 수다를 떨었다. 나에게는 보통 아줌마를 만나는 인간관계가 없어서 드문 기회였던 것이다.

오늘도 날씨가 덥지만 월요일이라, 도서관을 향했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손빨래를 해서 널고 창문을 열고 나갔다. 도서관에서 새로 온 책을 점검했다. 내 연구분야와 관련이 있는 재일 조선인에 관한 책이 몇 권이 있었다. 기대감을 가지고 봤지만, 두 권은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한권은 사할린 동포에 관한 연구였는데, 아주 좋았다. 연구를 주도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라, 어떻게 성장했는지 궁금했는데, 좋은 연구를 했다. 사할린 동포들의 살아온 여정이 녹녹하지 않다. 연구대상에는 일본인이면서 조선인 가정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 일본어에서 일본이 패전 후에 일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조선학교에 다녀 조선어를 배운다. 나중에 러시아어를 배우고 공부를 더 하는 경우도 있다. 소련이 붕괴된 후, 사할린 동포들의 삶도 힘들어진다. 그 중에는 일본으로 귀국을 한 케이스도 있고, 한국으로 영주귀국을 한 케이스도 있다. 가족 중 일부는 사할린에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일본으로 귀국해서 일본 국적을 취득한다고 ‘일본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한국국적을 취득해도 ‘한국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고려인들과도 다른 그들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경우, '국가' '민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サハリン留』 라는 책이다

책에는 직접적인 말로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개인적인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 간의 전쟁과 살고 있는 국가의 큰 변동이라는 격랑을 살아온 사람들의 씩씩함과 슬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박혀있다. 역사의 희생자이기도 한 그들의 삶의 여정과 애달픔을 상상하게 했다. 읽을 때도 슬펐지만, 읽고나서 집으로 돌아올 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많은 감정이 일어났다. 그렇다고 그들이 희생자인 면이 강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담담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게 강조된다. 그래서 더욱 슬펐다

그들과의 인터뷰와 기록하는 자세가 성실했다. 드물게 연구대상에게 다가가 깊게 이해하려는 걸 읽을 수 있어서 기뻤고 감동했다. 연구자와 연구대상이라기보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시선이다. 연구대상에 대한 존중과 배려, 사랑이 느껴졌다. 이런 것들은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다. 연구에서 풍겨 나오는 것이다

나도 생활사를 듣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요새 내가 읽는 책 중에는 자신이 살아오지 않은 시대와 세계를 경험한 사람에 대한 연구자세가 성실하지 못 한 걸 보는 경우가 꽤 있다. 특히 젊은 학도가 그랬을 때는 실망스럽다. 반대로 살아있는 인간을 그려내는데, 너무 거리를 둬서 인간이 박제된 경우도 본다. 연구대상에 대한 태도에서 연구자의 많은 것을 드러낸다. 연구자가 연구대상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것은 최소한의 윤리라고 본다. 연구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윤리마저 무시한 연구는 위험한 것이다. 기록을 한다는 자체가 권력을 가진 것이다. 기록이라는 것은 연구대상에 대한 ‘이해’가 아닌 ‘오해’를 줄 가능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감동적인 연구성과를 읽고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좋은 연구를 해준 사람들이 감사하다

사진은 요전에 비오는 날 찍은 수국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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