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4 라디오가 들린다
오늘 동경 날씨는 아침에 비가 왔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이다.
매미를 비롯한 벌레들이 시끄럽게 울어 대는 것을 보니, 날씨가 맑아질 징조인지, 기온이 올라간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오랜만에 라디오를 켰더니, 들린다. 아, 신난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일을 할 의욕이 솟는다. 오늘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집에서 일을 해야지…
어제 동경 날씨는 좀 더웠던 것 같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밤까지 도서관에서 지내, 날씨를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날씨가 더운 것 같았다. 가는 길에 공원을 지나면서 보니, 그 시간에 게트볼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는데, 어제는 게트볼하는 도구를 설치했는데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침에 학교에 도착해 보니, 술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다. 모자를 쓰고 갔는데도 더웠던 거다. 학교에 도착해서 깨달았다. 해가 져서 지면이 식기 전에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학교를 도보로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도중에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내친김에 밤까지 밀렸던 것들을 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거진 10시에 가까웠다.
그 전날 아침에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오늘 오후에 시간이 있으면 차 마시러 와. 3시에 갔다. 3시는 간식을 먹는 시간이다. 친구가 직접 만든 음료가 몇 종류 있었다. 샌드위치도 두 종류 만들었다. 친구와 같이 차를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다.
나는 학기가 끝난 것을 친구와 반성했다. 올해 봄학기는 괜찮았던 것 같아, 여성학에서는 일학년 여학생들이 좋았고, 지역연구 동아시아도 수업 때 좋았는 데, 리포트도 전반적으로 괜찮았어. 좀 안 좋았던 현대 도시론은 학생들이 3-4학년인줄 알았는데, 2학년들이였어. 아무래도 2학년이면 어려웠을 텐데, 그래도 열심히 따라왔어. 근데, 과목은 달라도 올해 학생들 경향이 내 강의를 듣고 ‘사회에 나갈 용기가 생겼다, 자신이 살아갈 방향을 잡았다, 이렇게 살겠다, 저렇게 살겠다, 자신이 생겼다’였다고, 강의내용에는 전혀 그런 게 없는데 말이야, 그리고 자기도 알다시피, 내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할 정도가 되는 인간이 못되거든, 양심상 학생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할 수가 없지. 근데, 학생들이라는 ‘인간’이 굉장한거야,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자기들대로 해석하고 알아듣다니. 어느 학생 하나는 리포트에 아예, 선언을 했더라고,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이라고, 앞으로 지켜봐 달라고’. 아주 확고했어, 그런데, 나는 마음이 착찹하더라고,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지만, 그 아이가 살아가는 길이 험난하고 고독한 게 아닐까, 혹시 내가 ‘무책임’하게 등을 떠 밀었을까. 설사, 내가 그 아이 등을 떠밀었다고 해도,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문제는 학생들이 ‘성장’을 한다, 그 것도 쑥쑥. 내가 ‘성장’도 ‘발전’도 없다는 것이다. 체중은 조금씩 꾸준히 불고 있지만, 이 건 ‘성장’이 아니라, ‘비만’이다.
내가 맡았던 학생 중에는 ‘사회에 공헌하는 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 건 일본 사회를 알면 아주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라는 걸 알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편한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 학생들이 선택이 나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를 만나서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아마, 자신들 속에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으리라, 결정적으로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자’ 쪽으로 방향을 틀 때 내가 주변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라고 권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런 선택을 한 학생에게, 그 길은 사회에서 평가를 못 받는 힘든/위험한 일이야, 그렇게 외롭고 힘들지 않은 ‘행복’하게 사는 길을 택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이런 길을 가겠다고 할 때는 벌써 의지가 굳어진 상태이다. 그리고, 그런 길을 간다. 그런 친구들은 그 후에도 자신이 가는 길에 내가 '동행'을 한다고 믿는다. 나는 내 인생을 살 뿐인데, 그렇게 믿는다. 이상하다.
친구가 내일 장례식에 간다고 했다. 가깝게 지내던 선생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지난주 그 선생님 여동생이 규슈에서 돌아가셨단다. 거기에 무리해서 다녀와 병원에 입원했는데, 폐렴이 되어 돌아가셨단다. 올해 연세가 만 85세란다.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서 돌아가셨으니… 요즘은 다 오래 사는 세상이라, 그냥 오래 사는 게 좋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어떻게 살다가 죽는 게, ‘잘 죽는 건지’ 모르겠다. 날씨가 더워서 외출하는 게 힘들겠네, 그냥 그 정도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특히 위로 할 말이 없다.
차를 마시고, 친구가 내가 자른 머리를 손봐줬다. 뒷쪽은 보이지 않아서 쥐 뜯어먹은 것처럼 들쑥날쑥해서 모자를 쓰고 다녔다. 친구네 베란다에서 머리를 다듬었다. 그리고 매실주를 아주 조금 마시고 둘이서 산책을 나갔다.
어제는 학교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야 했다. 일을 하다 보면 점심을 못 먹을 것 같아 아침을 많이 먹었다. 학교에 가면서 점심도시락으로 오이와 오렌지를 하나씩 가지고 갔다. 가는 길에 운이 좋게도 무인판매를 하는 데서, 오이와 방울토마토, 오쿠라를 한 봉지씩 샀다. 점심으로 방울토마토가 생긴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텅 빈 도서관 화장실에서 오렌지와 방울토마토를 먹은 게 3시이다. 미국에서 온 오렌지가 맛이 없어서 입맛을 버렸다. 방울토마토로 입가심을 하고, 다시 일을 한다. 결국, 오이를 먹은 것은 밤 9시가 되어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학교에서 책을 빌어 짊어지고, 손에 들었기 때문에 먹을 건 먹어서 짐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일을 하다 보면 배가 고픈 것을 못 느낀다.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배도 고프고 정신이 없어진다. 밤에는 지면이 많이 식어서, 도서관에서 몸도 식어서 어떻게 돌아왔다. 내가 도서관에 가는 것은 꼭 밭에 가는 것 같다. 일을 할 연장을 가지고 가서 일을 하고, 성장한 야채/새로 나온 책을 체크하고, 도서관/밭에서 수확한 것을 운반해야 하는 육체노동이다.
저녁은 아직도 부드러운 오쿠라를 살짝 데쳐서 잘게 썰어서 미끈거리는 것을 더 미끈거리게 만들어 작은 멸치를 섞어서 먹었다. 디저트는 파인애플에 요구르트를 먹었다. 시간이 늦어도 그냥 먹었다. 이러니 여름에도 살이 안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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