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14 고수의 리포트
오늘도 동경은 화창하게 맑고 더운 전형적인 여름 날씨였다. 최고기온은 오전에 검색했을 때 35도라고 나왔는 데, 오후에 다시 검색을 했더니 34도란다.
요새 38도를 연달아 경험해서 그런지, 36도가 견딜 만하고, 35도나, 34도는, 그냥 그래, 뭐 이런 수준이 되어버렸다. 더위도 내성이 생기는 것인가? 위험한 데… 말복이 지나서 그런지 최고기온은 최고기온이지만, 햇살이 약간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누그러졌다는 느낌이랄까, 그래, 누그러져야지…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인적일 수는 없지?
드디어 채점을 마치고 성적 입력을 끝냈다. 여름방학에 해외로 도망을 가지 않는다고 언제까지나 게으름을 피웠고, 평상점 집계가 오질 않아서 아주 늦어진 거다. 채점을 마치고 성적을 입력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학기가 끝나지 않은 것 같아,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워낙 성격이 유연성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리포트를 읽으면서 그 학생과 대화를 한다. 수업 규모와 과목 내용에 따라, 학생의 개인적인 특성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주로 강의만 하는 사람이라, 감상문을 통해서 학생들을 파악한다.
학기말 리포트를 읽으면 가끔 예상치 못한 일이 있다. 나쁜 걸 먼저 말하자면, 보통 때는 잘하는 데, 리포트를 베껴온 경우 배신감이 든다. 적어도 자신이 스스로 작성을 하라고 과제를 냈것만… 물론, 점수가 낮다. 결국, 이런 경우 평상점을 깎아 먹는 게 된다. 두 번째는 누가 썼는지 모를 리포트를 쓰는 학생이 있다. 나는 그런 리포트를 쓰지 말라는 과제를 냈기 때문에 이것도 점수가 높지 않다. 적어도 과제를 할 때, 기본적인 지시사항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기본적인 지시사항을 무시하는 리포트가 꽤 있다. 말을 안 듣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건 거의 시험문제를 안 읽고 답안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제대로 된 답안이 나오기 힘들다. 시험문제를 잘 읽어야 좋은 답안이 나온다.
그러나 아주, 아주 드물게 평상시 실력 발휘를 못하고 리포트에서 실력 발휘하는 예가 나온다. 오늘 노동사회학과 여성학을 채점했는 데, 노동사회학 리포트에서 만점이 둘 나왔다. 하나는 평상시에도 아주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아주 성실하게 잘 썼다.
또 하나는 평상시에 감상문을 두 줄 밖에 못쓰는 학생의 리포트였다. 학생들 중에는 정신 질환이나, 아니면 능력적으로 특별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학생이 있다. 그런 경우 담임선생이 그런 사항에 대해 알려준다. 어느 학생은 이런 약물치료를 받고 있어서, 수업시간에 졸 수가 있으니, 양해를 해주세요. 이 학생은 겉보기와는 달리 능력이 이렇습니다. 그런 정보를 알려준다. 그렇지 않으면 조는 학생은 수업태도가 나쁜 것이고, 능력이 없어서 감상문을 못쓰는 학생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실질적으로 학생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성적을 파악하는 잣대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같은 잣대를 가지고 학생을 평가한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학생의 다양함에 맞는 잣대가 없으며, 학생은 사회에 나가서 살아야 하니까, 사회에서 요구하는 잣대를 인식시켜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른 선생과 대화를 해도 같은 생각이다. 아주 기본적인 걸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에는 출석을 해야 하고, 결석을 했으면 결석 이유를 증명하지 않으면 무단결석이 된다는 걸로 시작해서 아주 기본적인 걸 요구한다.
이 학생은 맨 앞에 앉아서 수업내용을 녹음하는 학생이었다. 처음에 수업내용을 녹음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왜? 집에 가서 복습을 하려고 한다고… 그래, 괜찮아. 다른 학생들에 비해 뭔가 조금 달랐지만,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었다. 수업을 열심히 들어도 감상문을 두줄 밖에 못 쓴다는 거 외에는… 그 수업에서는 날뛰는 남학생들을 붙잡고 수업을 진행해야 해서 신경은 거기로 가 있다. 물론 거기에 열심히 듣는 학생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학생이 장애가 있다는 걸 학기 중에는 전혀 몰랐다. 감상문에 개인적인 문제를 쓰지 않으면 파악을 못한다.
리포트를 읽고서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장애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쓰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안 것이다. 나는 그 학생의 리포트를 읽으면서 울었다. 학생이 자신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초연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장애자를 비롯한 마이놀리티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유니버설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내용의 리포트였다. 신오쿠보에서 한국사람들을 비난하는 자이토쿠카이(재특회) 데모에 관해서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고, 마이놀리티 탓으로 돌려 공격하는 것은, 사고가 정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간단히 선동을 당한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 한다. 자이토쿠카이를 여기까지 명확하게 비판하고 분석한 문장을 못 봤다. 그리고 “글로벌한 세계에서 자신이 마이놀리티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며, 마이놀리티의 시점에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라고 계속된다. 유명한 작가나 선생이 쓴 글에서도 이렇게 명확하게 지적한 걸 못 읽었다. 그 학생의 리포트를 몇 번이나 읽었다. 읽을수록 그 깊이와 정확함이 느껴진다. 글자나 문장이 기억에 없는 데, 깊게 파문을 일으킨다. 오자는 딱 하나였다.
자신의 지향하는 사회를 위해서,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아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쓰여 있다. “가벼운 장애가 있어서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납기가 없고 정성을 들이는 것에 가치를 둔 일, 장시간의 인내성이 필요한 일, 패턴화 된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그 건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 해내기 위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쉴 새 없이 노력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 관해서,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현재의 능력으로 보다 나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늘리는 걸로, 장애자가 노력해야 이해를 하는 게 아니라, 장애가 있는 그대로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해서 다른 장애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단다.”
여기에 다 표현을 못하지만, 학생은 자신을 송두리째 받아들이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인생을 받아들여 살아가려는 의지가 보인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는 티도 안 내면서 세상이 험난하다는 불평도 없이 조용히 그러나 처절하고 담대하다. 체념했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고 달관한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그러면서도 확고하다.
나는 아직도 내 인생을 받아들이지 못해 아등바등한다. 세상에 대해 불평불만도 끝이 없다. 맨날 해야 할 일에 쫓겨 허둥지둥 수선을 피우며 살아간다. 학생들 리포트에 울고 웃으며, 잠 못 자면서 휘둘리는 삶이 좀 부끄럽다. 학생이 리포트로 세상이 아무리 험난하다고 해도 “선생님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세요? 인생은 그래도 살 만해요”라는 것 같다. 리포트를 통해서 나에게 살아갈 꿈과 희망과 용기를 준다. 인생의 고수다. 가끔 이 리포트를 꺼내 보면서 힘과 용기를 얻어야겠다.
요새 찍은 사진이 없어서, 전에 찍은 사진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