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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학생

기대와 열망

2013/09/30 기대와 열망

 

오늘도 동경은 맑고 청명한 날씨였다.

지난주에 개강을 했다. 서울에 가서 오블 동네 마실을 하고 모처럼 사람이 사는 인정을 맛보며 행복한 일주일을 지냈다. 오블 동네 마실은 계속 쓸 예정이었으나, 예기치 않은 일로 잠시 멈춘다. 잠시 멈추는 게 될지 아니면 못 쓸지 모르겠다.

서울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더니 동경은 전날 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단다. 아파트단지 걷는 길에도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엄청나게 떨어져 쌓여 있었다. 그리고 아래층 아줌마네가 이사를 가고 없다. 일주일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 위층 피해망상인 이웃과 소동이 났을 때, 내편이 되어줬는 데… 섭섭하다. 아주 오래 살았다고 했는 데, 왜 이사를 가셨을까? 내 주위에 집들이 비어 있다. 여기는 일본 정부에서 하는 임대아파트다. 임대아파트는 두 종류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저렴한 것과 어느 정도 수입 이상이어야 들어가는 저렴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저렴하지 않은 쪽에 산다. 정부에서 하는 게, 민간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값이 비싸다. 웃기는 정책이다. 그러니 비는 집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컴퓨터에도 태풍이 지나갔는 지. 내 컴퓨터가 지금 데모 중이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 노트북을 빌려왔다. 화면도 문자판도 작아서 아주 답답하다. 손이 커서 미스타이프를 하고 만다. 서울에 가서 찍은 사진이 집에서 쓰던 데스크톱에 저장해서 오블 동네 마실을 계속해서 못 쓴다.

 

지난주에 개강해서 긴장되고 바쁜 날이 연속이었다. 주말에도 토요일과 일요일에 외출을 했다. 계속 바빴다. 주말에는 밥도 못 먹었다. 평소에도 먹는 게 부실한 데, 그것 마저도 걸렀다. 생산성도 없이 바쁘면 짜증이 난다. 오늘 저녁에 산책 다녀와서 겨우 숨을 돌렸다. 서울에서 돌아올 때 느낀 것은 빈곤한 생활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본격적으로 사회복귀를 못했다. 지난 주말에 책상도 정리할 생각이었는 데 못했다. 어제는 선배가 안 쓰는 노트북이 있다고 가져다 쓰라고 해서 받으러 갔었다. 십 년 전 것이다. 노트북이 거대해서 정말 무겁다. 거대한 만큼 화면이 커서 학교에서 빌려온 것보다 화면을 보기가 편하다. 화질이 좀 떨어지고 늦다. 내일 학교에 가서 손을 좀 봐 달라고 가져가야 한다. 학교에서 빌려온 것과 내 것을 두 대나… 여기까지 썼더니 택배가 왔다. 친구가 집을 정리하다가 털실이 나왔다고 한 상자 보냈다. 실이 아주 굵은 실들이다. 어쩌면 친구 어머니가 쓰시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짜다가 그만둔 것도 있고…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친구 어머니가 가지고 계셨던 실은 내가 물려받았다. 색상이 아주 선명하며 품질이 좋은 유럽산 실을 좋아하셔서 나와 취향이 맞았다. 오늘 보낸 실은 색상이 중간톤이다. 아주 오래전에 썼던 실 종류다. 이 실로 당분간 뭘 만들까 상상하면서 놀아야지. 지금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세 대다. 평소에 쓰던 데스크톱, 화면이 옆으로 길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었는 데… 지금은 잠을 잔다.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은 화면이 큰 것으로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았다. 그냥 글 만 쓰고 있다. 작은 것으로 인터넷을 연결해서 라디오를 들으며 글을 쓴다. 작은 노트북이라 음질이 좀 신경질적이다. 스피커에 연결이 안 된다.

 

조금 전에 전 호주 수상이었던 쥴리아 길라드의 스피치가 있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란다. 나는 그녀가 수상을 관둘 무렵부터 아주 좋아졌다. 처음에는 너무 야심 찬 것 같아 호감이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탄소세를 도입하고, 물론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잘했다. 멋있었다. 호주 노동당의 내분으로 그녀가 당수로는 선거에 질거라, 그 전 수상이었던 캐빈 럿드가 다시 수상을 했다. 결국, 선거에 왕창졌다. 지금 수상인 토니 애빗에 관해서는 수영복을 입고 설치던 사람이었다는 인상 밖에 없다. 나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던 쥴리아가 그만 두고서 호주정치가 급격히 빛과 매력을 잃어갔다. 토니 애빗이 수상이 되서 느끼는 것은 캐빈 럿드가 되기 전, 수상이었던 답답한 시대로 거꾸로 거슬러 간다. 내가 보기에 쥴리아 길라드는 수상을 그만둔 후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 자리에 있을 때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 그 자리를 떠남으로 보여오는 게 있다. 

 

캐빈 럿드는 실질적으로 수상을 한 기간은 길지 않다. 그런데 나는 캐빈 럿드를 아주 근접거리에서 서너 번 본 적이 있다. 한 번은 시민권을 증정하는 식전에서, 한 번은 호주 국립대학에서 무슨 식전이 있을 때, 내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또 봤는 데 생각이 잘 안 난다. 처음 수상에서 외상으로 내려갔을 때 내가 아는 친구가 그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부에서 그다지 평이 좋지 않다는 걸 들었다. 겉으로 보기와는 아주 다르다.

 

지난주 개강을 해서 지역 연구 호주를 수강하는 학생이 백 명이 넘었다. 보통 오십 명 정도가 딱 좋은 데, 백 명이 넘으면 수업이 힘들다. 내가 힘든 만큼 성과가 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학생들이 내 수업에 기대를 하는 ‘열기’에 차있다. 그야말로 내 수업이라, 기대를 하고 왔다는 코멘트가 많다. 기가 막히다. 내가 뭔데… 학생들이 ‘열망’하고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학생들이 더 많다. 여학생들이 감정표현을 확실히 한다. 내 수업을 기대하고 있다는 ‘열기’를 뿜어낸다. 가장 열심인 학생들은 유학생들이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작년에 내 수업을 들었던 중국인 유학생이 초코파이를 하나 갖다 준다. 서울에 다녀왔다고… 수업이 끝나고 한 남학생이 수줍게 말을 한다. 제 사촌이 브리스 벤에 유학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 한번 가고 싶어요… 정말 귀엽다.

 

학생들이 기대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기쁜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학생들이 내 강의를 통해서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진다는 데… 어쩌라는 것인가. 

 

 

사진이 없다잠자는 컴퓨터에 저장이 되어있다. 카메라에 남아있던 사진 중에 학생들의 열망과 기대의 이미지로 보이는 것 같은 걸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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