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7 학생들의 난민화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그다지 비가 오지 않았는 데, 조금 있으니까 비가 본격적으로 내렸다. 오늘은 겨울용 시트를 사러 갈 작정이었는 데 그만뒀다. 비가 오니 청소도 빨래도 못한다. 그냥 집에서 휴일처럼 보내기로 했다. 휴일처럼 보낸다는 것은 먹을 걸 잘 먹는 것이다.
아침으로 아프리칸 샐러드를 먹었다. 아프리칸 샐러드도 그냥 내가 부르는 것이다. 당근과 감자, 계란을 삶아서 소금과 후추에 레몬과 올리브유를 쳐서 먹는 것이다. 닭고기나 다른 야채를 같이 삶아도 된다. 아침부터 샐러드를 푸짐하게 먹고 어제 산 과자도 커피와 같이 먹었다. 어제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감을 많이 사 왔다. 감이 많이 나오는 계절에는 많이 먹어둬야지.
오후에 네팔 아이가 문자를 보내왔다. 취직이 내정되었다고… 내일부터 고향에 한 달 다녀온단다. 취직이 되었다지만, 어떤 회사인지 아직 모르겠다. 요새 취직을 해도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든 곳이 많아서 인간들이 망가진다. 그래서, 취직했다는 소식에도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그래도, 잘됐다고 장래 일은 고향에 다녀와서 같이 고민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어쨌든 혼자서 장하고 기특하다.
9월 서울에서 지내고 왔더니 동경의 분위기는 더욱더 침체되어 있었다. 개강해서 동료들을 만났더니, 모두가 여름의 살인적인 더위에서 하루 하루 사는 게 힘들었단다. 그렇게 더위가 무서웠다. 그리고 9월이 되자, 태풍과 지진과 홍수가 쉴새없이 들이닥쳤다. 그런 와중에 일본 국회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보 법안을 막무가내로 통과시켰다. 길은 걷는 사람들 발걸음도 힘이 없이 느리다. 젊은이도 생기가 없다. 2011년에 대지진이 났을 때도 사람들은 군대처럼 발걸음을 맞춰서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요새 동경에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넋이 나간 것처럼 흐물거린다.
지난 주에 학생들과 있었던 일이다. 월요일에 도서관에 갔을 때, 가끔 도서관에서 만나서 인사하는 여학생과 만났다. 여름방학을 어떻게 지냈냐고,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건 결과가 나왔냐고 물었다. 공공정책을 하고 싶다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었다. 대학원 시험에 떨어졌단다. 그래서 오늘부터 취직활동을 시작한다고… 큰 일이다. 지금부터 어떤 회사에 취직을 할지? 괜찮은 회사는 있는지? 걱정이 된다. 도서관에서 나와서 대학원 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은 큰 실력차가 아니라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단다. 말이 쉽지 결코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원하는 성과가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인생을 결코 짧은 것이 아니라고, 힘든 것도 나중에 자신에게 힘이 된다고 했다. 개량한 기모노에 삿갓을 쓰고 학교에 다니는 아주 개성적인 아이였다. 인사하는 사이라고 격려했더니,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한다. 오히려 내가 깜짝 놀랐다. 그냥, 힘내라고 격려한 것이라고, 크게 보면 같은 대학에서 공부한 선후배이기도 하니까,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주 작은 배려로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말에 감격한다는 것은 힘든 상황에 따뜻하게 격려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다. 너무도 삭막한 세상이다.
목요일에는 지난 두 주간 결석한 학생이 나왔다. 지난 주에 주변 학생에게 연락을 하라고 왜 학교에 안 오냐고 물었더니, 학교에 올 교통비가 없단다. 야, 시리아난민을 구할 수는 없어도 가까운 친구가 ‘난민’이 되는 건 구해야지. 내가 보기에는 교통비가 없는 것보다, 뭔가 심각한 고민이 있다. 목요일에 와서 친구에게 연락을 받고 선생님에게 졌단다. 당연하지, 내 얼굴을 봐라, 나에게 이기나. 넌 나에게 잡힌 학생이야, 결석하게 그냥 둘 것 같아. 그동안 마음이 아팠단다. 목요일에 쓴 걸 봤더니 훌쩍 성장했다. 돈이 없다더니, 어디 사는 데? 가까워요. 교통비가 얼마야? 170엔요. 그게 없을 때가 있어요. 그 정도는 나에게 말해, 내가 비싼 이자를 받고 빌려줄 게. 옆에서 듣던 학생이 빵 터지고 만다. 이자가 얼마냐고?
옆에서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던 학생은 내 강의를 들으면서 나와 만난 걸 ‘운명’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자기가 잘되게 힘을 실어주는 존재로서 내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지난 주에는 수업 중에 한 번도 휴대폰을 만지지 않았다고 선생님 보셨어요? 그래, 내가 봤어. 제가 중독이 된 것 같아서 선생님 앞에서 휴대폰을 안 만지기로 했어요. 제가 어떻게 하는지 선생님 지켜봐 주세요. 알았어.
다른 학생들도, 사정을 아는 학생에게 말을 건넨다. 학생들은 자기를 기억하고 잘되게 이끌고 지켜본다고 믿는 아이들은 그런 말에 힘을 얻는 모양이다. 결코,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요새 동경에서 사는 젊은 아이들이 고민이 많다. 막연히 아주 불안하고 걱정이 많다. 한국에서는 ‘헬조선’이라고 아우성친다. 일본에서는 일본을 ‘천국’으로 자화자찬하는 풍조가 강해졌다. 그러니까, '천국'에 살면서 힘들다면 그건 개인 탓이 된다. 그러면서 소리도 못 지르고, 속으로 곪아 터져 골병들어 죽어간다. 상황이 비슷해도 표출되는 형태는 정반대다. 그래서 일본사람들 조차도 일본의 상황을 잘 모른다. 멀쩡한 젊은이, 학생들에게 살 맛을 잃게하는 정치다. 학생들이 ‘난민’이 되어간다. 왜, 자국민을 ‘난민’으로 만드냐고?
요새는 마이넘버라고 개인식별 번호가 시행된다. 거기에 소비세를 10%로 올린단다. 아주 살짝 보도되었지만, 일본의 내수가 많이 떨어졌단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살짝만 보도한다는 것이 일본 스타일이다. 현재 자신들의 상태가 어떤 지에 대해서 보도를 제대로 안 한다. 중국에서 수입이 20%나 줄 정도로 최악인 상태인 데, 소비세를 올린단다. 어떻게 정치가 국민들에게 ‘죽어라, 죽어라’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넋도 없이 흐물거리면서 위태롭게 겨우 살아가고 있는 데… 정치가 그야말로 ‘난민’을 대량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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