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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미소지니와 제노포비아

천사와 악마와 친구

2015/10/05 천사와 악마와 친구

 

오늘 동경은 춥다. 최고기온이 어제보다 10도나 떨어져 18도였다. 10월 초순 기온이 아니다. 집은 춥지 않아서 그렇게 추운 줄 몰랐다. 아침에 77부 소매 셔츠에 긴바지를 입고 나갔다. 통이 넓은 바지를 입어서 그런지 추웠다. 도서관에는 새로 온 책이 읽을 만한 것과 필요한 책이 있었다. 읽으려고 가져간 책도 있었다. 바깥날씨가 추운 데도, 도서관은 냉방을 하고 있어서 추워서 오돌오돌 떠느라고 책 읽는 데 집중이 잘 안된다

도서관에 항상 앉는 곳인 4층에 올라가기 전에 신문을 봤더니 도쿄신문에 아는 친구 기사가 크게 실렸다. 그 친구를 잘아는 사람에게 문자를 했더니 어제는 아사히신문에 크게 실렸단다. 요새 어디에 사는지 몰랐는 데, 히로시마에 산단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8 15일 야스쿠니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다. 열심히 촬영하고 있던 걸 완성했나? 중국에 있는 위안부를 찍었다는 데, 영화를 안 봤으니 야스쿠니가 어떻게 찍혔는지 모르겠다. 이전에 중국에 있는 위안부를 책으로도 냈다. 어쨌든 아는 사람이 성과를 냈다니 반갑다.

요새, 연구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어서 관련된 책을 중점적으로 찾아 읽고 있다. 사회적약자를 다루면서 접하는 자세가 성실하지 않은 걸 보면 화가 난다. 사회적약자를 다루는 데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전하는 내용에 따라, 사회적약자에 대한 이해보다 오해를 더 부추기어 편견을 늘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취재하는 방법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취재를 못하게 막아놓는 경우도 있다. 책을 읽다보면 그런 것도 고스란히 보인다. 글을 쓴다는 자체가 일종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 권력을 사회적약자를 향해 휘두르는 것이 된다

요새 읽은 책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책을 소개하자
우선, 일본에서 신생아 입양을 확대하기 위해 고군분투(혼자서는 아니고)하는 선의의 사람들이 활동을 알리는 책이다. 입양을 할 때, 가능하면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입양을 정하는 것이 좋단다. 그 것이 아기에게도 사정상 자신의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산모에게, 입양하는 부모에게도 좋다는 것이다. 아기가 유아원에서 성장하면 입양했을 때, ‘애착장애’로 아기도 입양한 부모도 힘들단다. 아기를 낳은 엄마도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하고…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작은 벽에 둘러싸여 안전하다는 느낌에서 태어났을 때, 주위에 벽이 없으면 불안하단다. 그래서 아기가 울면 얼른 안아서 벽이 보호해준다는 걸 인지시킴으로 안심을 한다네… 일본에서는 생물학적 부모가 키울 수 없는 아기 90%이상이 유아원에서 자라서 3살이 되면 양호시설로 옮겨져 성장한단다. 시설에서 성장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사회에 나가도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고…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정과는 달리 시설에서는 공동생활에 돌보는 사람이 적고, 돌보는 사람도 자주 바뀌어 아이들이 성장하기에 좋은 곳이 아니란다

아기들을 위해서 가정양육 여기서는 신생아 입양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이 ‘천사’ 같다. 아기들은 아이를 갖고 싶었던 양부모에게 ‘천사’가 된단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일본의 가정양육은 너무 적단다. 미국과는 정반대의 숫자란다. 한국도 가정양육이 47%된다는 데… 일본이 10%도 안된다고 안타까워한다. 신생아부터 시설양육은 아기에게나 사회에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니란다. 일본에서도 아기를 못갖는 사람들이 많은 데, 신생아 입양이 늘었으면 좋겠다.

다음 책은 재일동포가 쓴 책이다
저자는 헤이트스피치 데모 현장을 쫓아다닌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재특회가 이름을 부르며 공격해서 상처 입고 울면서도 쫓아다닌다. 나는 이름을 불리며 공격당하지 않아도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 유튜브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무서워서 잠이 안 온다. 저자가 느끼는 걸, 현장에 가지 않은 나도 절실히 느낀다. 나는 현장에 갈 자신이 없다. 안전한 장소에서 인터넷으로 유튜브를 보기만 해도 덜덜 떨린다. 헤이트 스피치가 아니라도 거리에서 일본 사람들이 외국인 구체적으로는 재일동포나 한국인, 중국인을 향한 차별과 멸시가 무섭다. 일본에 오래 살아서 직접적이지 않은 은근한 차별이나 멸시도 안다. 전혀 악의가 없다는 것처럼 위장한 정중한 차별이나 멸시도 기분이 나쁘고 무섭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느꼈던 것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나같은 마이노리티들이 이렇게 공포에 떨면서 사는 것이 일본이라는 걸… 참 슬프다. 그들은 차별하지 않는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친절하다면서 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일까? 무서워서 떨고 울고 구토가 나고, 잠도 못자는 것은 마이노리티들이 제멋대로 병이 나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이 장난삼아 공격해도, 악의가 없다는 듯 위장해도 상처를 입는다. 마이노리티를 공격해서 상처를 입히는 걸 너무도 잘 알면서, 장난인듯 악의가 없다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더 무섭다. 이 책에 나오는 마이노리티를 공격하는 일본인은 ‘악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일본인인지 몰라도 공격당하는 마이노리티에게는 ‘악마’인 것이다. 같은 사회에 전혀 다른 사람들, 같은 사람이라도 입장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은 일본기독교단 소속 여자 목사님이 쓴 책이다
내가 알던 일본기독교단에는 여자 목사님이 계신 줄 몰랐다. 거기에 레즈비언이라니… 놀랍다. 나도 사실은 레즈비언에 관해서 잘 모른다. 이 책에 나오는 레즈비언이 말하는 내용을 읽으니,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성적 지향’이 동성인 것은 아니란다. ‘성적지향’이라는 자체가 아주 애매하단다. 그러니까,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구분은 그다지 명확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파트너로서 ‘동성’을 선택한 것이란다. 그러면 ‘친구’네. 사람들이 ‘동성애자’에게 혐오를 느끼는 것은 ‘성적 지향’이 동성을 향했다거나, 동성끼리의 ‘성()행위’를 연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애자’를 볼 때 그들의 ‘성(적) 행위’를 연상하나? 연상한다면 ‘변태’겠지?? 즉, 결혼하는 남녀 커플이 아름답다면, 남남이든 여여든 아름다운 것이 되겠지?

수업에서 일부를 자료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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