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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아베정권

손바닥 뒤집듯이

2017/11/04 손바닥 뒤집듯이

 

오늘 동경은 화창하게 맑은 날씨였다. 내가 사는 주변에도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되어 단풍이 들었다. 단풍이 들었을 주변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오늘은 집에서 쉬면서 밖의 풍경을 즐기기도 했다.

 

주말에 날씨가 좋아서 참 다행이다. 이불과 베개를 말리고 두 번이나 빨래를 했다. 어제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쌀을 샀다. 집에는 현미밖에 없어서 흰쌀도 사고 싶었다. 어젯밤에 자기 전에 현미를 한 컵 씻고 물에 불렸다.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밥을 하고 생선을 구웠다. 된장국을 끓이고 상추쌈을 싸서 먹었다. 요새 생선을 자주 먹는다. 어젯밤에도 꽁치를 세 마리 구어 저녁으로 먹었다. 그냥 꽁치만 먹었다. 사실은 지난주에 원고 마감이 하나 있었다. 갑자기 서울에 가는 바람에 원고 마감을 일주일 미룬 상태다. 지금까지 원고 마감을 어긴 적도 밀린 적도 없이 살았는데,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일도 생긴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 다른 약속을 꼬박꼬박 지키면서 원고 마감이라는 약속은 잘 지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든 나는 원고 마감을 꼭 지켜야 하는 걸로 알고 살아왔고 지켜왔다. 원고 마감 사전에 메일을 해서 양해를 구했다. 일주일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원고가 밀린 상태라서 다른 글을 쓰거나 약속을 하기도 주저스럽다. 그게 가볍게 쓰는 블로그라고 해도 기분은 그렇다. 마음이 싱숭생숭하게 붕 뜬 상태이다. 다른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본에서 중의원 선거가 끝나고 돌아가는 상황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도 그런 상황을 많이 봐왔지만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당의 자멸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압승을 한 자민당이 태도를 바꿨다. 말로는 '겸허하게' 임한다고 하지만 태생부터 '오만한' 자세가 어딜 가겠나? 말뿐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라는 걸 알고 있다. 자민당이 이긴 것을 아베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로 여기고 있다. 매스컴도 선거 전과 선거 후로 태도를 싹 바꿔서 일제히 '아베 찬양'으로 바뀌었다. 매스컴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태도를 바꾸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다. 어쨌든 다시 '자민당 천하' '아베 천하'로 돌아온 것이다. 학생들 반응을 보면 '아베 정권에 맡기면 모든 게 잘될 거야' 라는 식이다. 너무 급격하게 변해서 매스컴이 정보조작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는 여러 학생이 비슷한 내용을 쓰면 어딘가에서 얻은 정보라고 본다. 선거 전부터 학생들에게 나돈 소문은 '아베 정권'이라서 취직률이 좋다는 것이었다. 생활하는 감각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아베노믹스 효과'가 뜬금없이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 막연히 일본이 잘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나도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잘 되길 바란다. 유감스럽게도 잘 되길 바라는 것이지 잘 될 거라는 근거가 없다.

 

지난 주는 핼러윈이라고 큰 화제가 되었다. 시부야에 가장을 한 사람들이 시부야에 몰려왔다고 행렬이 끝난 뒤 쓰레기가 많이 남았다고도 했다. 동경에서 가까운 자마에서 여성을 8명이나 죽인 토막 살인 사건이 밝혀졌다. 일본에서는 가끔 이렇게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그 때 마다 매스컴에서는 난리를 치지만 정해진 것처럼 사건이 과잉으로 소모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그렇겠거니 하고 있다.

 

지금 가장 화제가 되어 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딸 이방카가 동경에 와 있다는 것이다. 뉴스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난리가 난리가 아닌 모양이다. 어떤 접대를 했다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할 정도인 모양이다. 일본사람들이 워낙 좋아하는 조건을 갖춘 것이 이방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 딸이라는 조건에 백인, 젊은 미모의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방카를 국가적으로 환대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전야제인 것이다. 이방카가 이 정도면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왔을 때는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겠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앞둔 거의 축제 분위기다. 한국에서는 트럼프 방문을 환영하는 것과 반대한다는 데모가 열리고 있다는데, 일본에서는 극히 일부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 매스컴을 보면 총체적으로 환영 무드다. 나는 이것도 의도적으로 정보가 조작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정부와 매스컴이 일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방카가 트럼프 대통령보다 먼저 와서 일본이 국가적으로 환영하는 것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뉴스를 보다가 화가 난다고 할까,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 하나 있다. 지난 1일에 세계 경제 포럼에서 발표한 성평등 지수를 보면 일본이 144개국 중 114위다. 아주 심각한 수준이지만, 일본 정부에서는 여성을 위해 뭔가 한다는 폼만 잡을 뿐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겉으로 보면 아주 잘 갖추어진 것 같지만 속 빈 강정이다. 더군다나 '아베 정권'에서는 여성을 배려한 정치는 꿈에도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 이방카가 관여하는 여성 기업가 기금에 5000만불 (556억 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정치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기가 막히는 것은 나처럼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람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까지는 말만이라도 성평등 지수를 보고 여성의 지위를 향상해야 한다고 했지만, 올해는 그저 그런 발표가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저 말로 만이라도 하던 성평등을 지향해야 한다던 것조차 없어졌다. 이런 상황을 일본 여성들이 알고 분노하길 바란다. 손바닥 뒤집듯이 금방 잊으면 안 된다.

 

나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초고령화에 일손이 부족하다는데 여성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해결방법이 없다. 여성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들의 미래를 망하게 하는 것과 같다는 걸 하루라도 빨리 알았으면 좋겠다.

 

 

요새 찍은 사진이 없어서 이전에 찍은 사진을 올린다. 옷 무늬가 단풍이 든 주변 풍경과 비슷하다. 학생 고모가 만든 옷을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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