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주위를 보면 아픈 사람이 많다. 정신적으로 망가졌다고 할까, 부서졌다고 할까, 병들었다. 동경에 살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면 정상적으로 멀쩡하게 살아가기가 정말로 힘들기에 어쩌면 상처입고 아픈 사람들이 정상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일본을 보면 설마 그래도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생각할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사람들이 망가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려면 많은 조건들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동경의 너무도 슬픈 현실의 단면을 소개한다.
오늘 동경은 모처럼 따뜻하고 맑은 날씨였다. 창 밖은 아직도 가을인데 기온은 급격히 낮아져 겨울이 되니 몸이 따라가기가 힘들어서 쉽게 피로해진다. 기후의 변화에 따른 몸 컨디션의 상황은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에 비하면 약과다.
수요일에 가깝게 오래 친하게 지낸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일본인 여성으로 대학교수다. 현재 친구 주변에서 여러 사건이 진행 중이며 나는 그에 대해 상담을 하면서 친구를 심리적으로 서포트하는 입장이라서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명확히 하지 않기로 하겠다.
친구는 현재 몸과 마음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 아픈 상태다. 자신이 맡은 직책에 관한 일은 최소한으로 하고 강의는 펑크를 내지 않는다. 친구가 아프기 시작한 것도 유럽에서 1년 안식년을 마치고 동경에 돌아온 9월 이후다. 친구가 워낙 씩씩한 타입이라서 아파서 정신과에 다닌다고 해도 그 말을 하면서 둘이 웃고 있었다. 친구는 자신이 아픈 것은 공개하고 주변 동료와 아는 사람들에게 협조를 구해서 일하고 있다.
그런 친구가 주위와 힘을 합해서 해결해야 할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기로 하겠다. 그런 사건이 하나라고 할까, 불치의 암 같이 큰 덩어리가 있다. 여기에 쓰는 것은 작은 사건으로 최근에 일어난 일이다.
수요일에 유럽에서 돌아와 처음 만난 친구를 보고 한눈에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친구는 내가 강의를 마치고 들린 도서관까지 커다란 차를 몰고 왔다. 나와 점심을 먹고 상담을 해서 오후에 강의 간다고 했는데 옷차림이 집에서 지내는 편한 차림이다. 가방이나 차와 친구의 상태가 뭔가 뒤죽박죽이다. 편한 옷도 아주 헐어서 실밥이 너덜너덜하게 나온데 얼룩까지 보인다. 30년 이상 가깝게 지내도 집이나 밖에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이고, 많이 아프구나.
내가 사는 가까이에 있는 평일에 런치만 하는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내가 내고 예쁜색 피클과 말린 포르치니 버섯도 귀여운 비닐봉지에 담아서 전했다. 친구를 보니 다른 사건이 일어난 모양이다. 점심을 먹으면서 대충 말을 들었더니 대학에서 동료에게 폭행을 당했다. 말을 들으면서도 현실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상한 이야기였다. 나도 대학에서 오래 있고 상담을 통해 수많은 사건을 접해왔다. 나 자신도 황당한 사건을 많이 경험했지만 친구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폭행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동료와 문자를 주고받은 걸 보니까, 상대방이 정상이 아니다. 나이도 열 살이나 위인 상사에 대해서 아무리 남성이라도 반말에 단정적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문장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 여기서 감이 왔다.
상대방도 아픈 사람이구나, 복잡하게 망가진 상태다. 하지만 친구와 동료는 어디까지나 직장 동료, 상사와 부하이지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가 아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하는 행태가 마치 자신의 마누라나 애인에게 하는 특별한 관계에서나 받아 들일까 말까 하는 짓이다. 쉽게 말하자면 가정폭력, 마누라를 두들겨 패는 남편이 마누라에게 대하는 것 같은 행태다. 미쳤구먼, 미치려면 곱게 미쳐야지. 직장 상사가 여성이지만 마누라나 애인도 아니고 아픈 사람에 대해 뭔가? 그런데 일본, 특히 대학에서는 사회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남성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사회인인데 뭔 짓인가?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친구에게 했던 식으로 다른 동료와 학생에게도 행패를 부려서 '해러스먼트'로 고발을 당한 적도 있다. 그에 대해서도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다는 인식이라고 한다. 대학에서 학생이 교수의 행패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쩌다가 한 번 일어난 일로 문제제기가 되기는 힘들다.
점심을 먹고 자리를 옮겨서 친구가 동료가 난리를 치는 것을 녹음했다는 걸 듣겠냐고 해서 조금 들었다. 친구는 그 와중에도 논리정연하게 차분히 말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있었다. 단지 고함이 아니라,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을 수없이 하고 있었다. 이건 마치 친구를 막 두둘겨 패는 것과 같았다. 녹음한 것을 조금 들으니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두 시간이나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정말로 미쳤구나, 대학에서 교수가 벌이고 있는 일이다. 녹음을 들으니 친구의 상태에 대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친구는 동료에게 언어폭력으로 두들겨 맞아서 혼이 빠져나간 상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만두라는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상대방이 저항을 못하는 상태이니 두드려 패기에는 더 좋았겠지.
친구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그런 노력을 하지 말라고 했다. 상대가 폭력을 행하는 것까지 이해해야 할 관계가 아니다. 이런 사람을 이해하려면 더 일이 꼬이고 만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범주를 넘은 병든 환자다. 우리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고, 그를 케어해야 할 입장도 아니다. 일하는 동료로 직장의 인간관계다. 감정적으로 특별한 교류가 있는 관계가 아니다. 만약에 결혼한 상대였다고 해도 이혼해야 한다. 이런 폭행을 이해하고 견디려는 것 자체를 하면 안 된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잘못하면 '공의존' 관계가 되어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그런 언어폭력을 행사한 상대는 신입 여교수에 나이든 남성 교수와 지금 아픈 내 친구(여성)로 만만한 상대만 골라서 폭력을 행사했다. 확신범이구나. 이런 악질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자에게는 이해나 동정을 하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폭력'을 행한 '가해자'로 대해야 한다. 그게 자신과 상대방을 위한 길이다. 친구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상대방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 않다. 학생에게 '해러스먼트'를 했으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위험한 사람이다.
나는 어제 친구의 상태를 보고 상담을 하면서도 아픈 친구에게 솔직히 느끼는 것을 다 말 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강의를 가고 나는 집 가까이를 마트와 야채 무인판매 등을 정처 없이 걸었다. 공원에서 봐 뒀던 버섯을 맨 손으로 벗겨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20대 때부터 사귄 나보다 훨씬 젊은 친구가 망가진 모습을 보고 너무도 허망했다. 인생이 뭔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학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믿기가 힘들었다. 대학에 대해 환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 망가진 사람이 흔하디 흔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그야말로 막장드라마도 아니고 치정이 얽힌 사이도 아니다. 상대방이 이상한 '망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짐작하고도 남지만 이해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일본사회, 어느 직장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흔한 일이다. 아픈 사람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치료해야 하는 환자인데도 불구하고 병원이 아닌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정신과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기에 '해러스먼트'를 당하면 '피해자'가 된다. 그런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참고로 둘 다 기업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오늘 뉴스를 봤더니 일본에서 한국에 대해 '금융제재'를 할 수 있다며 아소 다로 재무상이 엄포를 놓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에 대해 한국은 충분히 대처할 수 있고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일본 기업이 더 큰 피해를 입기에 현실적이 아니라는 지극히 정상적이며 합리적인 추론을 한다. 한국에서는 일본 사회가 얼마나 미쳐 돌아가는지 모른다. 아베 총리나 일본 정치가, 매스컴, 재계를 보면 모르나? 일본 정부는 한국에 수출규제를 해서 '자해'하고 있을 정도의 피해를 입으면서도 멈추고 싶지 않다. 끝까지 가고 싶다. 일본은 자신들이 손해 보기 싫으니까, 하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하지 않는다. 한국과 전쟁을 하는데 죽어도 한국에 피해를 주고 싶다. 한국을 이지메 하고 못 살게 구는 짓이라면 뭐든지 하고 싶기에 설사 '자해'가 된다 해도 한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금융제재'만이 아니라, 어떤 미친 짓이라도 한다고 봐야 한다.
자유한국당을 보면 답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당의 이익이고 뭐고 지지세력이나 국민을 향한 명분이고 뭐고 소용이 없다. 문재인 정부를 방해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런 행태를 눈 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그 원조격인 일본 정부나 기업이 정상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고 기대 한다면 너무 순진하다. 자유한국당이 그렇듯, 일본 정부나 기업은 문재인 정부나 한국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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