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9 일본대학에서
동경은 요즘 갑자기 추워졌다.
겨울이 한꺼번에 깊어졌다고 할까, 아무리 날씨라도 사람들이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흔들리는 폭이 넓다. 그러면 사람들은 감기가 걸린다. 올해는 목감기가 주류로 장기전이 되는 경향이다.
실은 나도 감기에 걸렸다. 그런데 일주일에 나았다. 목감기가 오래갈 각오를 했었다. 그러나 강의를 하는 몸, 목소리가 안 나오면 강의도 힘드는데,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목이 부운 걸 소독하는데 호주에서 사 온 유카리 오일을 희석해서 가글링을 했더니 아주 효과적이었다. 일본 병원에서 주는 약도 잘 안 들었다.
내 감기가 나아서 유카리 오일을 학교에 가져가서 다른 선생님에게 빌려줬다. 소독을 해보라고 빌려줬다.
나는 기본적으로 강의 때마다 리액션 페퍼를 쓰게 한다.
거기에는 수업시간 때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학생들도 자신들이 얘기를 쓴다. 거기서 학생들이 의견을 듣기도 하고 데타를 뽑아내기도 한다. 일종의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학생과 선생, 수업은 학생과 선생 상호 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요즘, 일본에는 ‘클레이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클레임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 사회는 보통 클레임을 할 수 없게 되어있는 시스템이다(그래서 숨통이 막힌다). 거기서 클레임을 하는 사람들이란, 정당한 이유에서 나온 클레임이 아닌 억지를 쓰는 사람들을 뜻한다.
학생 중에도 클레이머가 있다. 그것도 아주 공격적인 클레이머가 있다.
2000년 이후 일본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수업에 관한 평가 앙케트를 한다. 물론 이걸 시작할 때는 태만한 선생들에게 자극을 주고 학생들이 책임 있는 평가를 기대해서 보다 나은 수업을 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은 거의 모든 수업이 학기가 끝날 무렵 이 앙케트를 실시한다. 나는 그 걸 기획해서 실시하는 쪽이기도 했다.
근래 수업평가 앙케이트를 눈여겨보고 분석을 했다. 수업내용과 관계없이 불평불만을 쓰는 학생, 선생을 공격하는 학생들이 있다. 나는 매시간마다 리액션 페퍼를 받아서 읽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개인적인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 주로 수업평가 앙케트에 수업내용이나 진행과 관련이 없는 인신공격을 하는 코멘트를 쓰는 학생은 수업을 못 따라가는 학생이다. 그리고 단위 취득이 어려운, 즉 성적이 나쁜 학생이다. 수업에 관심을 가지고 들은 학생들이 수업이나 선생에 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담당하고 있는 수업에 관한 분석이다.
지난주 금요일 수업에서 한 학생이 리액션 페퍼에 쓴 내용이 기가 막혔다.
수업시간에 자신이 한 것에 대해 틀렸다는 지적에 대해, 자신이 열심히 한 것에 관해 틀렸다는 지적을 한다는 것은 자기에 대해 실례라고 다음부터는 조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른 학생에게 확인했다. 나는 내가 특정한 학생에게 창피를 주려는 의도의 지적이 있었냐고, 학생은 지금까지 수업에서 그런 걸 느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20년 이상 강의를 해오고 있으나 이런 지적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이건 선생한테 대단히 실례가 되는 행위이며 발언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틀린 걸 지적하는 건 선생들의 일이다. 다른 선생한테 의견을 구했다. 다른 선생들은 무시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내가 화를 내면, 그 학생이 원하는 반응이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 기가 막히고 황당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단지, 오랜만에 위가 아파오고, 힘이 빠져서 다음 시간은 수업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 학생은 항상 클레임을 한다. 수업시간에 자신을 따돌렸다거나, 잘 보아주지 않는다거나, 사실 이 학생이 이름을 외운 건 다른 학생이 전혀 쓰지 않는 그리고 내가 하지도 않는 일에 피해망상적인 클레임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수업태도가 나쁘다. 그 걸 모르는 모양이다. 그 학생이 수업 태도가 안 좋은 걸 지적한 적이 없다. 다른 남학생들이 떠들면 그 걸 지적한다. 경고를 하고 그래도 떠들면 교실에서 퇴장시킨다고도 한다. 아직 퇴장한 학생은 없다.
선생들 한테도 귀엽고 예쁜 학생이 있고 얄밉거나 싫은 학생이 있다. 내 경우는 수업시간에 선생 지시대로 수업에 따라오는 학생들이 좋다. 이런 학생은 10% 정도이다.정도이다 얄밉거나 싫은 학생은 수업을 방해하거나 선생한테 노골적으로 반항적이거나 선생을 무시하는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도 10% 된다.된다 그러나 수업에서는 수업방해 외에 지적하지는 않는다. 수업을 잘 따르는 학생과 방해하는 학생이 같은 수라도 방해하는 학생들 영향력이 훨씬 크다.
그래도 내 수업은 수업 분위기가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학생들 한테 무시당하는 선생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날뛰어서 수업 진행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수업을 제대로 듣고 싶은 학생도 듣지 못한다.
요즘 학생이나 후배들을 보면, 내가 사람이 좋아 보이는지, ‘공격’을 하면서 자신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앞으로 희망이 보이면 그 걸 지적하고 개선할 것을 요구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그냥 둔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 애정을 갖고 개선을 요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잘못을 지적하는 데도 애정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작년에 어떤 수업에서 한 여학생이 리포트(인터넷( 검색에서 따온 것을 글자체가 다르고 크기가 다른걸 그대로 프린트해서 제출)가 너무 형편이 없어서 그대로 두면 단위를 못 받을게 뻔해서 주의를 했다. “다음에는 노력해서 리포트를 잘 써야 단위를 받을 수 있다”라고,,,”고 그 여학생은 일 학년이었는데, 다른 학생들 앞에서 창피를 주었다고 난리를 부렸다. 심지어 자신이 귀여워서 내가 질투를 해서 집단 따돌림 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다. 다른 학생들 반응이 싸늘한 걸 보면, 그 학생이 하는 말이 설득력이 없기는 없나 보다.
금요일부터 토요일 밤까지 우울했다.
이런 일이 있으면 내가 학생들 한테 필요한 존재인가, 교단에 설 필요가 있나 생각한 게 된다. 선생도 인간이라 상처를 받는다.
학생들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좋은 수업을 하려면 할수록 힘들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