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7 박살난 크리스마스 저녁
오늘 동경은 잔뜩 흐리고 비까지 오는 춥고 우울한 날씨이다. 요새 나는 동면에 들어간 두더지처럼 게으른 일상을 보낸다. 두더지가 동면을 하나? 내가 곰은 아니지? 아마 두더지 정도는 될 거야. 두더지 생태도 잘 모르면서 두더지에 비유한다는 게 두더지에게 좀 미안하지만, 그냥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한 끼 정도 먹고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뜨개질을 하면서 보낸다는 뜻이다. 방학이 되면 이렇게 게으른 날을 며칠 보낸다.
어제는 가까운 우체국에 가서 국제우편을 보내고, 연하엽서도 사 왔다.. 그리고 산책을 좀 했다. 연하엽서를 써서 보내야 하는 데, 그럴 의욕도, 기분도 생기질 않는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크리스마스 저녁을 먹으러 다녀온 다음부터 기분이 아주 복잡하고 저조하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 마음이 복잡해지고 저조해지는 일이 아주 드물다. 그만큼 크리스마스이브에 있었던 일이 충격적이었다.
보통, 할로윈과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고마바에서 보냈다. 봄에는 꽃구경도 빠지지 않는 행사다. 내가 외국에 나가서 동경에 없으면 참가를 못하지만 동경에 있으면 빠지지 않는다. 학부 학생 때 거기서 살아서 가족처럼 가깝게 사귀어 왔다. 그 집 딸이나, 아들도 유난히 나를 가깝게 대해주고 신경을 써줬다. 나는 큰 문제가 없는 한 사람을 오래 사귀는 사람이다.
올해는 동네에서 하는 할로윈 행사가 없어져서 할로윈에 식사를 하는 것도 없었다. 같은 날 동네에서 있는 바자를 갔다가 집에 들러서 엄마를 보고 돌아왔다. 엄마 말로는 요새 아버지와 아들이 싸워서 집안 분위기가 나쁘단다. 그러면서 차를 마시고 밥을 간단히 먹고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빨리 가라고 한다. 내가 마치 엄마가 데리고 재혼한 딸 같은 기분이었다. 자세한 말은 안 들었지만, 분위기가 나쁜 것 같았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이브날 오후에 엄마와 아버지의 선물을 준비해서 고마바에 일찍 갔다. 집에 가니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었다. 보통 때보다 손님이 좀 적었다. 분위기도 약간 쓸쓸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눈치를 못 챘다. 평일 날이라서 그렇겠거니 했다. 아버지는 술 취해서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나도 잘 아는 엄마친구가 왔다가 먼저 돌아가셨다. 부동산회사 직원도 두 명이 와서 나름 맛있고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손자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고 술도 마시고 거의 종반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가 부동산 회사 직원을 데리고 집을 보인다고 데려갔다. 2층과 3층을 안내한다. 나는 그냥 집 구경을 시키는 줄 알았다. 그랬더니, 부동산 직원에게 2층과 3층을 쉐어하우스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2층, 아버지가 사는 곳과 문을 닫지 말고 개방했으면 좋겠다고, 요즘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외로우니까,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같이 살면서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한다. 엄마가 2층에 살았는 데, 언제부터 아버지가 2층에 살기 시작했는지 몰랐다. 요즘 들어서 그렇단다.
3층에는 아들이 살고 있었다. 엄마에게 살짝 물어봤다. 아들은 어떻게 하며, 엄마는 괜찮은 거냐고? 아들은 집에서 나가서 살란다. 엄마는 자기에게 그런 여력이 없다고, 할머니와 큰언니를 돌보러 다니는 게 중요하단다. 당연하다. 엄마는 반대인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왜 저러냐고, 반대를 하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엄마더러도 이 집에서 나가라고 했단다. 기가 막히다. 아버지가 노망이 난 걸까.. 엄마는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들고 협력하며 살아왔다. 아버지는 올해 80세, 자기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단다.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들이 있는 데, 엄마 의견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 아들도 작년에 우울증으로 짐작되는 증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아서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모두가 정말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멀쩡한 아들이 결혼을 안 하는 게 속상하겠지만, 지금 집에서 나가라고 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실은 요전에 꿈을 꿨다. 꿈에서 내가 호주에 가려고 했더니, 난데없이 아들이 나에게 엄마를 두고 호주에 갈 거냐고 한다. 아들이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놀랬고 너무 생생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꿈 얘기를 했다. 딸이면 몰라도 아들이 그런 말을 했다고 했더니,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꿈이 완전 황당한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외롭다는 것도 기가 막히다. 집은 완전 아버지의 독재체제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가족이 아버지를 위한다. 딸이 뭐라고 말을 했더니 딸에게도 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단다. 사위도 자리를 같이해서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국사람이 싫단다’ 그전에도 그런 말을 했던 터라, 나는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왜 하냐고, 아버지와 나는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라고 할 범주가 아니지 않냐고 했다. 아버지 말이 그런 범주란다. 기가 막혀. 딸과 엄마가 옆에서 나에게 아빠 말을 무시하라고 한다. 나도 지금까지 무시했었다. 그런데, 완전 정색을 하고 ‘한국사람’이 싫단다. 그걸 듣고 있던 딸이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퍼붓는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국가 간의 관계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가족 같은 사람에게 ‘한국사람’이 어쩌고 ‘일본사람’이 어쩌고 그래도 되는 거냐고 했다. 아버지가 완전 판을 깨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미안해하고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졌다. 나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박살난 분위기는 걷잡을 수도 추수릴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가 부동산 직원과 나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사위가 나와서 아버지가 술 취해서 저런다고 사과한다. 나는 사위보다 아주 훨씬 오래 아버지를 봐왔다. 아버지 속내도 안다. 그렇다고 나에게 이러면 안된다. 엄마에게도, 아들에게도, 딸이나 나에게 함부로 해서 상처를 주면 안 된다.. 그러고 나서 미안해서 손자를 시켜서 귤을 가져가라고 대문 밖까지 보냈다. 나는 귤을 싹싹 긁어왔다. 달콤했던 귤이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가끔 폭력을 행사한다. 그 걸 ‘사랑’이라면서 용서받을 줄 알고 있다. 어떤 관계에도 해서는 안될 말이 있다. 아버지는 한국과 일본관계가 나쁘다고, 세상에서 '혐한'이 아무리 활개를 쳐도 30년 가까이 사귀면서 쌓아온 정을 박살내고 싶었던 걸까? 엄마나 아들, 딸도 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든 가족이니까 껴안고 갈 거다. 그러나 상처 받는다. 가족이기에 그 상처는 깊고 아프고 쓰라린다. 아버지는 그 걸 알까? 마음이 복잡하고 기분이 저조하다. 대단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30년 가족처럼 지냈던 인간관계가 박살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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