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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풍운의 도시, 난징 2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13도로 맑은 날씨였다. 낮에는 햇볕이 들어와 따뜻했는데 저녁이 되면서 냉기가 돌고 있다. 최저기온이 영하 1도라고 한다. 나는 요새 집에서 무말랭이를 만들고 있다. 지역 농가가 재배한 무가 엄청난 크기로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다. 무를 먹었더니 수분도 많고 아주 달아서 과일에 가까운 맛이 났다. 엄청난 크기의 무를 사다가 잘라서 말리고 있다. 날씨가 건조하면 잘 마르는데, 습도가 높으면 마르지 않는다. 당분간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니까, 잘 마를 것 같다. 무말랭이가 마르면서 양이 너무 줄어서 엄청난 크기의 무를 세 개나 말린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다. 

 

 

풍운의 도시, 난징으로 돌아가자. "4부 서양식 근대화가 시작된 곳"부터 남경의 근현대사가 시작된다. 우선, 아편전쟁이다. 영국이 밀수로 팔던 아편을 중국에 합법적으로  더 많이 수출해서 폭리를 취하려고 침략한 1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졌다. 그로 인해 영국과 남경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고 99년 임대한다는 약속으로 홍콩을 넘겨주게 된다. 결국, 1997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중국에 반환이 되어 '일국 이체제'가 시작되었지만, 중국에서 바라보는 홍콩과 홍콩 사람들이 느끼는 홍콩은 전혀 다르다. 중국에서 보면 홍콩이 '아픈 손가락'이었는지 몰라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자립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양 쪽 사이의 많은 갈등이 작년말 홍콩시민의 데모로 드러난 것이지 싶다. 나는 중국을 존중하지만, 홍콩시민을 지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편 영국이 중국과 맺은 조약이 근대 불평등조약의 기원이 되어 그후 청나라와 열강과 맺은 통상조약에 똑같이 적용되었고 서양 각국이 조선이나 일본과 맺은 조약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과 조선이 맺은 조약도 일방적으로 일본에게 유리한 불평등조약이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청나라와는 영국과 프랑스가 2차 아편전쟁까지 일으켜 영국이 유리하게 아편 무역을 합법화하기에 이른다. 1894년에는 청나라에서 영국에 수출한 차와 잠사, 면화 대금과 영국에서 수입한 아편 대금이 같아졌다고 한다. 청나라에서 아편 흡입자가 증가한 것은 당시 청나라 경제가 좋아지면서 소비자의 구매력이 높아진 것이 이유라고 한다. 영국에 대한 중국의 차와 물품 수출이 많아서 영국의 무역적자가 심했던 모양이다. 그걸 영국에서 중국으로 아편을 많이 수출해서 무역적자를 메꾸려고 택한 방법으로 전쟁이었다니? 2차 전쟁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북경으로 쳐들어가 황제의 별궁을 불지르고 아편 무역 합법화를 포함해서 더 많은 이권과 특권을 받아냈다고 한다. 어쩌면 일본이 조선에 했던 짓거리와 같다. 일본이 훨씬 더 흉악했지만 말이다. 

 

다시 남경으로 돌아오면 남경은 '태평천국'(1851-1864) 기독교의 혁명세력에 의하여 점령되어 수도가 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인구가 죽을 정도로 참혹했고 재산몰수와 집단노동, 가족해체를 당하기도 했다. 젊은 지도자가 이끌었던 '태평천국'은 대단히 혁명적이었다. 토지를 남녀 구분 없이 사람 수대로 분배하며 비옥하고 척박한 땅을 반씩 섞어 배분했고 음식이나 의복, 금전도 나누며 평등한 세상을 지향했다.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지향했던 것은 '사회주의'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경은 아니지만, 그전에 1894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일전쟁이 벌어져 일본이 승리해서 시모노세키조약을 맺고 요동반도와 대만을 넘겨주게 된다. 일본에 의해 대만이 점령당해 식민지지배가 시작되었다. 

 

중국과 대만의 시초인 중화민국이 탄생해서 수도로 삼았던 곳도 남경이다. 미국에 있던 손문이 대총통으로 취임하기 위해 1912년 1월 1일 귀국해서 총통에 취임하고 중화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다. 손문은 '태평천국'이 지향했던 세상을 이루고자 했는지, 자신을 '태평천국'의 지도자 홍수전을 본받아 제 2의 홍수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운 그는 대총통에 취임한 석 달뒤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 손문은 결국 1925년에 공화정 실시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황제에 오른 원세개와 군벌과 싸우던 중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손문이 이끌던 중화민국의 임시정부 청사였던 총통부와 손문의 무덤인 중산릉은 남경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손문이 설계한 중산복이 그 후 모택동을 비롯한 공산당 지도자들이 입는 걸 봐도 손문의 영향력은 뿌리깊게 남아있다. 그옷은 북한의 인민복이기도 해서 지금도 북한 최고 지도자들이 공식 석상에서 입는다. 중화민국을 탄생시킨 손문이 지향하는 세상이 '태평천국'과 같았다면 국민당도 처음에는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했던 것이 아닐까? 중국과 대만 양 쪽에서 존경받는 손문이 중국과 대만이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걸 상징하는 것 같다. 그를 품은 남경은 중국과 대만 사람에게 일종의 '성지'일 것이다. 

 

결국, 손문의 유지를 받든 국민당은 나중에 1945년 8월 항일투쟁 승리 이후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1949년 인민해방군에 밀려 대만으로 건너가 현재의 대만, 중화민국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북경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과 대만은 분단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화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 대만으로 갈라서서 70년이 지났지만, '분단국가'라는 의미에서 남북한에 비교해 볼 때 중국과 대만의 폭넓고 자유롭게 보이는 교류가 부럽기만 하다. 남북한의 중국과 대만 정도의 교류가 가능한 날은 언제일까? 남북한도 '실리'를 추구해서 하루빨리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독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5부 한국 항일 운동의 본거지"가 아닐까 싶다. 5부를 읽고 남경(중국)과 우리(남북한을 합한)의 깊고 특별한 인연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 혹시, 중국 남경을 여행하실 계획이 있다면 이책을 읽고 남경에 있는 항일 운동의 본거지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남경에는 맛있는 음식도 참 많아서 배울 것과 먹을 것이 많은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맞아 '중국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에게 이부분을 꼭 읽게 했으면 좋겠다. 선조들의 항일 운동은 중국, 당시 중화민국의 비호와 강력한 지원과 협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항일투쟁에서는 중국과 공조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중국과 한국이 항일투쟁처럼 공조해서 물리치고 평온한 일상을 맞았으면 한다. 부디 꽃피는 봄이 오기 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종식시키고 꽃피는 봄이 오면 바깥에 나와 산으로 들로, 중국으로 한국으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또 옆 길로 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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