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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풍운의 도시, 난징 3

요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중국이 세계적인 주목과 비판을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주변국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면서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중국인'을 특정하지 않고 '아시아계' 전체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기도 한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처럼 열렬히 '혐중'에 열중한 나라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평소에 지니고 있던 중국에 대한 '혐오'를 아낌없이 표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의 움직임도 보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걸 이유로 '중국인'이 '차별' 당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라서 부당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혐중'을 하면서 자신이 '중국인'으로 보인다면 싫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한국인'이라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말도 듣는다. 나는 그런 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묻고 싶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중국인'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한 감정이 깔려있다. 너무나 무지하고 몰지각한 발상이다. 솔직히 나는 대학에서 학생을 외모로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을 구별하라면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의식'에서는 구별할 수 있다는 위험한 인식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이야 말로 '인종 차별'적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인종이 문제가 아니라, '혐오'나 '차별'이 문제다. '혐오'의 다음 단계는 '학살'이나, '전쟁'이 된다. 그렇기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혐오'가 훨씬 무섭다. 

 

 

풍운의 도시, 난징으로 돌아가자. 내가 가장 힘들게 읽은 부분은 "6부 피눈물을 흘린 땅"이다. 읽기도 힘들었지만, '아픔'을 동반하기에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다. 일본군에 의한 '남경 대학살'과 '위안부'와 '남경의 731부대'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일본군의 만행을 통해서 전쟁의 가장 참담하고 인간의 추악함이 아낌없이 드러난다. 이하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1937년 중일전쟁에서 12월 13일, 중화민국의 수도 남경이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일본군의 폭격과 탱크로 남경성이 뚫리고 말았다. 남경 성벽은 주원장의 지휘하에 사상 유래 없이 높고 두껍게 쌓았기 때문에 성벽이 사상 최초로 일본군에 의해 뚫린 것에 중국 사람들은 충격 받아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일본군 폭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군의 후퇴는 양자강을 건널 배가 부족해서 작전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패잔병이 남경 시내에 많이 남게 되었다.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패잔병은 민간인과 동일하게 간주해야 했지만 일본군은 중국군을 색출해서 살해했다. 남경대학살의 시작이었다. 일본군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민간인도 학살하기 시작했다. 자랑스럽게 백 명 이상 죽이기 게임을 했다는 당시 일본 신문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남경대학살 기념관에 가서 보면 그 자료를 볼 수가 있다. 일본이 전쟁 중에 한 일을 보면 직접적으로 전쟁을 하는 군대만이 아니라, 민간인도 같이 전투를 하는 심정이었다. 예를 들어, 8월 13일 중국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제공한 특별 열차 편으로 중국 헌병대의 안전한 호위하에 남경에서 상해 조계지를 향하던 일본인들이 나가사키에서 날아온 폭격기가 남경에 폭탄을 무차별 투하했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자신들이 살던 곳이 파괴되고 거기에 살던 중국인이 죽는 것에 대한 같은 인간으로서 동정의 여지도 없었던 모양이다. 

 

남경대학살은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의 남경 점령과 동시에 시작되어 다음해 1월 하순까지 6주간 군사작전처럼 지속되다가 갑자기 멈췄다. 도쿄전범재판에서 희생자를 30만으로 추정했는데, 그 숫자는 6주 동안 12초에 한 명씩 죽인게 된다. 그런데 도쿄전범재판에서 남경대학살 책임자로 지목된 마쓰이 이와네는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그 위패가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고 한다. 또 한명은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라고 쇼와 천황 히로히토의 숙부이자 친고모부였기 때문에 처벌을 면하고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일본 정치가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중국이나 한국, 과거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나라에서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범'이 야스쿠니에 합장이 되었는데 정치가가 참배하면서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행한 과거의 잘못을 정당화하고 있다.

 

남경대학살 가해자 중에 조선인이 많았다는 유언비어가 있지만, 조선인이 징병되기 시작한 것은 남경대학살 이후이기 때문에 조선인이 있을 수가 없다. 일본에서는 항상 이런 유언비어가 나돈다. 전쟁도 자신들이 일으켰지만 가장 악독한 일은 조선인이 앞장서서 한 것처럼, 지금도 일본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재일동포'가 범인이라는 유언비어가 돈다. 모든 나쁜일은 조선인이 한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정신구조인 모양이다. 

 

욘 라베는 남경대학살 중에 600여명의 중국인을 적극적으로 보호한 사람으로 지멘스 남경 지사장이면서 독일 나치당원이었다. 당시, 독일과 일본은 동맹이었기 때문에 일본군이 그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욘 라베는 중국인 난민을 보호하는 이유를 선교사로서 고통 받는 중국인,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형제인 중국인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독일에 돌아간 후에도 남경대학살 현장 필름을 상영하며 학살의 실상을 알렸고 『라베 일기』라는 책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에 의해서 목숨을 건진 중국인은 그를  '수호천사'로 여기며 오래 기렸다. 그런 의미에서 남경시에서 도로 확장 계획을 변경하여 남경대학교 구내에 있던 라베의 옛집을 보존했고, 지멘스에서 수리비용을 대서 2006년 기념관이 되었다. 

 

 

남경에는 일본군 위안소 중 최대 규모의 '동운 위안소'가 있었다고 한다. 2003년 11월 북한에 살던 박영심이라는 위안부로 끌려갔던 분이 남경을 방문해서 17살에 끌려가 수용되었던 위안소 장소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 현장을 저자도 동행했던 모양이다. 최대 규모의 위안소에서는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 사병을 받던 위안소와 일본인 '위안부'가 일본 장교를 받던 위안소가 같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박영심 할머니는 1921년생으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소학교 2학년 중퇴해서 양복점 심부름꾼으로 일하고 있었다. 1939년에 높은 임금을 받는 간호사 자리가 있다고 속인 일본 순사에 끌려가 평양역에서 화물열차에 올랐고, 일본 헌병의 감시하에 며칠을 달려 양자강 변에 도착한다. 끌려온 곳이 남경인 줄도 몰랐고 위안소에 도착해서야 속은 것을 알았다고 한다. 위안소에서 죽도록 맞고 성폭행을 당한 뒤에 주저않아 7년, 하루에 몇십명을 상대하며 난폭한 일본군의 칼에 찔리기도 다반사였다. 태평양전쟁에 차출된 일본군에 의해 미얀마까지 끌려갔다가 다시 중국 운남성 송산으로 끌려온 뒤 1944년 생포되었다. 전투에 패한 일본군은 모든 위안부를 사살하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때 만삭인 상태로 미군에 찍힌 사진이 훗날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일본 학계에서 주목을 받은 할머니는 일본 학자와 함께 남경과 운남을 방문하여 생생한 증언을 남긴 10년 뒤에 북한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으로 철거 운명에 놓였던 일본군 최대 위안소는 철거를 면했다. 아픈 역사의 현장이 철거되지 않고 역사의 기억을 보존하여 2015년 12월에 위안소 전시관으로 문을 열었다. 저자는 위안소를 다녀올 때마다 어리고 젊은 위안부의 아픔이 떠올라 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남경대학살 기념관에 갈 때도 날씨가 좋을 때 가는 편이 좋다고 했다. 저자가 쓴 글을 읽으면서 몸과 마음이 아프고 글을 쓰면서 눈물이 나고 몸이 얼얼하다. 아마, 위안부와 같은 여성이기에 그러는 걸까?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겠지 싶다. 

 

 

731부대는 하얼빈에만 있는게 아니라, 남경에도 있었다. 1939년 남경에 설치된 특수 세균전 수행 1644부대의 명칭은 화중 파견군 남경 방역 급수부라고 하며 또 하나의 731부대였다. 1996년 7월말에 23명의 일본인이 남경을 방문했다. 당시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1644부대 현장 답사팀이었다. 그팀에는 남경 1644부대원이었던 퇴역 일본 군인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 측 취재진의 질문에 일체 함구했던 퇴역 군인이 1644부대 본부 건물을 마주하고 한 노병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입을 열었다. 1940년부터 4년 동안 근무하면서 전염병 검사를 맡았다고 했다. 1644부대는 표면적으로 작전 중인 일본 부대에 깨끗한 물을 보급하고 방역을 위해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다른 부대는 이 부대의 실상을 몰랐다. 인체 실험 대상자가 살아서 그 부대 밖으로 나온 적도 없다. 그 부대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가 파기되어 인체 실험 피해자의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1939년부터 패전까지 이 부대의 실험으로 희생된 사람은 적어도 1천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1644부대에 대해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 부대에 3년 기밀문서 취급병으로 근무했던 이시다 진타로가 암으로 임종을 앞두고 중국 유학 중이던 조카에게 1644부대에 대한 상세한 증언에 의해서다. 1644부대원을 100명 이상 찾아냈지만, 그처럼 자세하고 정확한 증언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교토제국대학과 도쿄제국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최고 등급의 기밀 임무를 맡았던 군의관 출신들은 특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뒤 일본 의학계의 권위자나 고위 공무원으로 명예로운 삶을 살았다. 그 중에는 중일 수교 후 남경 1644부대가 알려지기 전, 반성은 커녕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중국 의학계의 초청을 받아 낙후한 중국 면역학계와 교류하기도 했다. 이시다 진타로가 조카를 통해 남경시에 기증한 1644부대 관련 유물은 현제 중국 국가 1급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 정치가 중에는 남경대학살이 중국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고 남경 함락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연설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서 남경 함락을 기념하는 멘탈리티도 이해하기 어렵다. 위안부에 관해서도 한국에서 날조된 것이라고 일본으로부터 돈받을 목적으로 파렴치한 거짓말을 한다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다. 731부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알지도 못한다. 나는 아베 총리가 취임해서 얼마되지 않아, 731이라는 숫자가 쓰인 비행기에 타서 엄지 척한 일본판 뉴스위크의 표지를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를 모르는 일본 교수들에게는 경악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일 뿐이었다. 역사를 아는 동료는 눈을 의심했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본 총리가 직접 나서서 '혐중'을 선동하고 중국을 비웃었다. 그런 문맥에서 '혐중'이나 '혐한'은 일종의 국책이라고 볼 수 있다. 

 

1644부대원이나 남경대학살의 책임자에 천황의 가족이 있었던 것처럼 침략의 역사에서 일본은 군인과 민간인, 의사와 왕족에 기업까지 총동원했으니까, 모두 '공범 관계'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집단적 기억 상실'에 걸린 척 역사마저 자신들이 편하게 수정하는 걸 서슴치 않는다. 항상 일본에서 잊고 싶은 역사를 상기시켜주는 걸로 보면 그들은 결코 '기억 상실'이 아니다. 패전에서 부활의 상징이 1964년의 도쿄올림픽이었다면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는 과거 군국주의 찬양과 회귀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기회로 삼을 모양이다. 침략 전쟁을 하고 식민지지배를 했던 '전범'이 전후 총리가 되었고 그 자손이 대를 이어 총리를 하는 일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서 재발견한 것은 "펄 벅의 중국 사랑"이다. 중학생 때 읽었던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지'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농촌 풍경 묘사에 메뚜기떼가 몰려오는 부분과 흙먼지가 인상에 남는다. 다시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통해서 저자의 중국과 남경에 대한 사랑이 진지함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남경의 아픈 역사에 대한 부분이 좋았다. 일본 사람들에게 읽기를 바라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인으로서 "5부 한국 항일 운동의 본거지"를 읽고 근현대에 중국과의 특별한 인연과 몰랐던 항일 투쟁의 공조를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방인으로 남경에 살면서 이 책으로 남경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충분히 한 것 같다. 친구에 대한 우정이라도 아픔을 공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에는 남경의 맛있는 음식과 여성을 중심으로 쓴 즐거운 이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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