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경도지사의 긴급 기자회견이 영 찜찜했다. 도쿄올림픽이 연기되었다고 지금까지 감추다가 덜컥 코로나 19를 전면에 내세웠다. 두 달이나 대비할 시간이 있었으면서 갑자기 불어닥친 광풍인 듯 자극적인 말로 몰아붙인다.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고 그동안 감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온 시민을 '공포'에 떨고 '패닉'에 빠지게 하고 싶은 모양이다. 쇼로는 대구시장과 막상막하다. 어제 긴급 기자회견도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목소리만 들었다. 말하는 스타일도 온갖 교양이 있는 척 겉멋에 취하다 보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한다. 어제 기자회견의 요지는 이번 주말 '외출 자제'였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봤더니 일본 정부가 '비상사태 선언'을 할지도 모른다고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어제 동경도지사의 기자회견에 열 받았는데, 일본 정부도 지금까지 도쿄올림픽 강행으로 밀다가 이제 와서 코로나 19로 '비상사태 선언'을 한다고? 망할 무능력한 정치가들은 '공포 정치'로 사람을 억압할 생각밖에 없나? 정말로 짜증이 났다.
'비상사태 선언'을 하면 어떻게 되는데? 80세가 되는 친한 이웃에게 전화를 했다. 만약, '비상사태 선언'을 하면 어떻게 되는데? 응, 잘 모르겠는데. 나보다 오래 살았고 전쟁도 겪었으니까, '비상사태 선언'을 하면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와요? 감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은행에 가서 현금을 여유 있게 뽑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갖고 있는 게 좋을까? 카드도 있잖아. 카드가 있어도 일본에서는 잘 안쓰니까, 눈치도 보이고 현금이 가장 좋은 것 같아. 한 달 동안 식료품을 살 거면 얼마 안 되지? 그러면 여유를 가지고 10만 엔을 뽑을게, 하고 20만 엔 뽑았다. 상황에 따라 여차하면 100만 엔이라도 수중에 갖고 있어야 한다. 돈을 뽑는 게 먼저가 아니었다는 걸 마트에 가서 알았다.
오늘 동경은 맑고 기온이 21도까지 올라갔다. 내일부터 비가 오고 앞으로 일주일 날씨가 나쁘다고 한다. 벚꽃구경을 하기에 최적인 타이밍은 오늘이다. 그런 중요한 날에 '비상사태 선언'을 준비하는 정황을 알게 되다니. 정말로 무능한 정치가들로 인해 기분이 나쁘다. 일찌감치 가볍게 점심을 먹고 은행에 갔다. 은행에 가는데 도보로 20분은 걸어가야 한다. 은행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ATM에 줄 서서 돈을 뽑고 나왔다. 다이소에 들러서 마스크가 있나 봤더니 없다. 다른 약국도 두 군데나 더 들렀지만 마스크가 없었다. 아예, 입구에 마스크가 없으며 언제 입하될지 모른다고 써서 붙였다. 동경 교외에서 마스크를 입수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다가 내가 '마스크 상사병'에 걸리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코로나 19가 오기 전에 출퇴근하면서 들리던 마트를 곁눈으로 봤더니 사람이 많았다. 요즘 내가 가는 사람이 적은 마트로 가야지. 날씨가 좋으니까, 벚꽃 구경을 한 번 돌았다. 사람이 있는 곳도 있었지만, 벚꽃 구경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에 내일부터 날씨가 나쁘다니 올해 벚꽃 구경 마지막 타이밍이 될 것이라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어제보다 사람이 매우 적었다. 공원에는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은 많았다. 뭔가 공기가 심상치 않다. 동네에서 꽃구경하는 사람이 너무 적어. 어제 도지사 기자회견의 영향인가?
평소보다 일찍 마트에 갔다. 세상에나, 마트에 사람도 많지만, 사람들 동작이 정확하고 민첩하기가 차원이 다르다. 평소에 내가 알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 아니다. 닌자의 후손들의 동네였나? 동작이 다 마술사 같아서 마술을 부리는 줄 알았다. 벌써 다 팔려서 텅텅 빈 곳도 많지만 눈 앞에서 물건이 없어지는 게 빛의 속도라는 걸 처음 봤다. 나는 기세에 완전히 눌려서 다리가 풀린다. 정신을 꼭 붙들어 매고 쌀이 있는 곳에 갔더니 쌀 종류가 완전히 싹 팔리고 없다. 국수 진열대에 갔더니 비싼 것만 몇 개 남고 깡그리 없어졌다. 나는 스파게티를 한 봉지 샀다. 스파게티를 잘 먹지 않지만 쌀과 국수가 없으면 스파게티라도 먹어야지. 계란은 비싼 계란까지 차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계란을 진열했던 세 군데 진열대까지 없어졌다. 고기도 없고 생선은 좀 남았다. 라면도 봉지라면이 다 팔렸는데 남은 것은 신라면과 같은 매운 라면뿐이다. 컵라면은 좀 남았지만 많이 팔렸다. 간장도 다 팔리고 화장실 휴지도 다시 선반이 깨끗해졌다. 식빵 선반도 깨끗하다. 다른 빵 선반에도 생과자만 조금 남고 깨끗이 팔렸다. 우유도 다 팔렸다. 내가 산 것은 스파게티 한 봉지에 마지막 남은 하귤 한 봉지, 생표고 두 봉지, 아스파라거스 한 봉지, 유기농 콩나물 두 봉지, 과자 한 봉지다, 평소에 내가 사는 과자도 다 팔려서 없었다.
돈을 먼저 뽑는 게 아니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어서 살 수가 없다. 친한 이웃에게 이럴 때 식료품을 사라고 알려줘야지 했더니 이웃도 놀라고 있었다. 아니, 왜 사람들이 그러냐고? 만약에 '비상사태 선언'이 되어서 외출이 어려워도 마트에는 갈 수 있을 텐데. 이웃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세상에 흐르는 공기의 움직임을 캐치하지 못했다.
마트에서 산 걸 짊어지고 야채 무인판매에 갔다. 밭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야채를 다듬고 있었다. 나물 한 단과 어린 양파 한 단, 금귤 한 봉지를 샀다. 아저씨에게 마트에 가니까, 난리가 났더라. 전쟁 난 줄 알았어. 아직 '비상사태 선언'을 한 게 아니잖아? 했더니 아저씨는 어제 도지사가 한 거 아니었어? 한다. 아니야, 어제는 긴급 기자회견. 어제 그 회견을 보고 사람들이 난리가 난 거야. 또 한 번 열 받고 만다. 혹시 내가 먹을 게 없어서 배가 고프면 아저씨네 밭에서 야채를 뽑아 먹고 나중에 말하겠다고 했더니 아저씨가 웃고 있다. 어쩔 수가 없잖아!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지만.
친한 이웃과 강가에서 만나 강아지 산책을 같이 시키고 수다를 떨다가 왔다. 80이 되는 이웃에게 물어봤다. 지금처럼 하 수상한 시절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전쟁도 있었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먹을 게 부족해서 힘들었잖아요 했더니 아니라고 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어려서 기억이 없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다음은 사이타마에 있는 친가가 부농이었고 외가에서 지냈다고 한다. 어머니가 기모노를 만드는 사람이라서 시골에서는 기모노 만드는 삯만이 아니라 먹을 것도 많이 가져왔다고 한다. 농가에서 먹을 걸 많이 보내서 쌀을 가지고 센베 집에 가서 센베를 맞췄다고 한다. 한국이라면 쌀을 가지고 방앗간에 가서 떡을 맞추는 감각이다. 다른 사람들은 배고픈 사람이 많았는지 몰라도 농사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 식료품을 살 수 있었다. 그때보다 지금이 세월이 아주 이상해서 참 슬프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대학원 교수 친구에게 전화했다. 만약에 '비상사태 선언'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 친구가 나도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일본인이면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나도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일인데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제 동경도지사가 대학 개강을 도립대가 5월 황금연휴가 끝난 다음이라고 발표해버렸으니까, 동경의 다른 대학도 현재 4월 20일 이후라고 했지만, 2주 더 연장이 될 것으로 본다고 한다(한국에 남은 유학생은 참고하길 바랍니다). 자기네는 대학원이니까, 원격 수업을 할 수 있지만 나에게 학부생은 어렵겠다면서 학생에게 전염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늘 마트에 가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더니 동일본 대지진 때도 똑같았다고 한다. 동경에는 피해가 없었는데도 사람들이 똑 같이 사재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그때 동경에 없었잖아. 그런데 사재기를 하는 게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아. 작년 태풍 때도 있었고, 지난번에도 코로나 19로 화장실 휴지에 쌀, 식료품 등을 사재기했어. 이번에는 동경도지사가 사재기 열풍을 불러일으켜 줬네. 일본에 살다보면 사재기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아.
친구는 이번 코로나 19로 동일본 대지진 때와 같은 사재기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봐서 일찌감치 1월부터 식료품을 비롯해 마스크와 다른 필수품을 비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온다고 말만 하라고 한다. 친구 집에는 부부가 사는데 냉장고 두 대에 식품이 가득, 쌀도 많고 마스크도 많다고 한다. 생선과 육류도 충분히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보험으로 그런 말만 들어도 든든하다고 했다. 솔직히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되는 것보다 사재기로 인해 텅 빈 진열대를 보고 사람들이 사재기하는 걸 본 충격이 컸다. 전쟁이 난 것 같다.
일본 정부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서 사실을 은폐하고 정보 통제나 했다. 자민당에서는 민주당 정권이라서 일을 못한다고 공격해서 먹혔다. 일본 사람들은 그 후 자민당이 아니면 안되는 줄 믿고 있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보면서 동일본 대지진과는 전혀 다른데, 지진처럼 갑자기 닥친 자연재해도 아닌데 왜 이럴까? 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지진 피해도 컸지만 원전의 폭발로 방사능 오염이 문제였다. 일본으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 19는 중국에서 먼저 일어났고 중국의 대처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19 사태를 맞아 질본과 정부, 의료진과 시민들이 대동단결해서 극복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나. 적어도 코로나 19에는 두 개의 선례가 있다. 코로나 19 사태를 보면서 자민당이나 민주당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무책임한 체질에 무능이 더해지면 이렇게 된다는 걸 알았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본, 얼마나 멋있나? 한국의 일부 정치가는 매우 부러울 것이다. 일본의 코로나 19도 무능한 정치가들이 일을 키우고 있다. 에효, 언제까지 갈라나?
친구가 오늘 병원에 가서 아는 의사에게 물었더니 일본은 병상이 많아서 코로나 19 중증환자가 발생해도 충분히 수용할 여력이 있다고 한다. 그런 연구를 하는 의사여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검사도 하지 않으면서 '의료 붕괴'가 일어난다고 언론 플레이한 것도 다 '거짓말'이었구나. 정말로 무능한 사람들이 꼼수만 늘어서 일을 어렵게 한다. 내가 화를 냈다. 아니, '의료 붕괴'를 하도 외치니 아픈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느낌이라, 병원에도 못 가잖아. 왜 검사를 안 하냐고, 검사를 하지 않고 길게 가자는 작전인가? 일본의 무능한 정치가들은 일본을 말아먹을 작정인 모양이다.
고이케 지사는 이번에 코로나 19를 빌려 '불안'을 부추기고 사재기 광풍 어게인을 불러일으켜 크게 한 건 했다. 도민에게 '신뢰감'을 안겨줘야 할 당사자가 '불안'을 선동하다니 최악의 정치다. 무능한 정치가를 욕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주위를 보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는 걸 우선으로 한다. 내가 보기에 사재기 광풍은 정치가가 무능해서 국가를 신뢰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지 코로나 19의 문제가 아니다. 무능한 정치가를 보고 있으면 열 받아서 없는 병도 생길 것 같다. 코로나 19보다 무능한 정치가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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