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주변 상황을 알고 싶어 마트를 세 군데 갔다. 물건이 채워진 마트가 두 군데, 물건을 채우는 족족 사가는 마트가 하나였다. 주변 상황이 급변하자, 나도 왠지 허기가 진다. 허기를 느끼는 일이 적고 요새는 허기를 느낄 정도로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허기를 느낄까? 주변 상황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허기짐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어젯밤에 오랜만에 현미와 콩을 씻어서 물에 불리고 잤다. 이럴 때는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야지.
오늘 동경은 흐리고 습도가 높으며 기온도 최고기온이 24도로 높았다. 하지만 강풍이 불어서 기온만큼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뉴스를 봤다. 사재기 광풍은 동경 전체에서 일어났던 모양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교외에 큰 역과도 거리가 있고 사람이 많은 동네가 아니라, 마트 앞에 줄 서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어제 오후에 갔더니 물건이 다 팔려서 동이 났다.
오전에 밥을 해서 버섯과 봄나물, 어린 양파를 같이 볶아서 많이 먹었다. 역시 밥을 먹으면 든든한 느낌이 든다. 코로나 19에 전염되지 않게 주의하면서 건강한 식사와 위생에 신경을 써서 면역력을 키워야지. 집에서 뉴스만 보고 있다가는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르니 하루에 한 번을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도 맡고 산책도 해야지.
동경도에서 도지사가 도쿄올림픽 연기와 함께 '동경 봉쇄'를 터뜨리더니 이틀 후에는 코로나 19 '감염 폭발'이 되는 '중대 국면'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정치가는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는 걸 방지하고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하는데, 동경도지사는 자극적인 언어로 '집단 패닉'을 유도했다는 점이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그동안 충분히 대처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준비하지 않은 정치와 행정의 문제로 보는데 일본 사람들은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다. 일본 정부나 동경도가 도쿄올림픽 강행에서 연기가 되자마자 정말로 손바닥 뒤집듯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코로나 19를 간판으로 내건 정치를 하고 있다. 동경의 경우, 그동안 검사했던 홋카이도나 아이치와 달리 가장 인구가 많은데도 감염자가 적다는 신공에 가까운 묘기를 보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감염자는 왜 도쿄올림픽 연기와 함께 숫자가 불어나는 것일까? 코로나 19도 도쿄올림픽이 예정대로 개최되는 걸 응원하느라고 동경에서는 잠자코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어제 동경도지사와 주변 지자체장이 화상회의를 했다고 한다. 이번 주말 동경으로 '외출 자제'하기 위해서다. 동경에도 인구가 많지만 주변에서 동경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290만 명이라고 한다. 거기에 대학을 졸업해서 회사원이 되고, 새로 입학해서 집을 얻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느라고 사람들 이동이 많은 시기다. 지방에서 아이와 함께 부모도 동경에 온다. 주변에서 주말에 동경으로 쇼핑을 오거나 지방에서 동경으로 관광을 오는 일은 허다하다. 가까운 지역에서 동경을 오가는 일을 이번 주말에 하지 말라는 요청을 했다. 사람들은 알아서 미리 외출 자제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비상사태 선언'을 하기 위해 정부 대책 본부를 설치했다. 아베 총리는 코로나 19를 '국난'이라는 표현을 썼다. 내가 알기로는 다른 일에도 '국난'이라는 표현을 썼다. 리더가 '국난'을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국민에게 떠넘기는 느낌을 받는다. '국난'에 처한 것은 국민이 잘못해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방치했다가 이제 와서 도쿄올림픽이 물 건너갔다고 코로나 19를 들고일어나 '국난'이 어쩌고 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리더가 선두에 서서 '국난'을 해결해야 되지 않을까?
동경도지사가 일본 정부에 코로나 19 대책으로 요청한 것은 '원천봉쇄'를 철저히 할 것과 '재정지원'이었다. '원천봉쇄'는 입국하는 사람 자체가 적으니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지만 극우로서 강조해야 면이 선다. 일본 정부의 중심적인 대책이 '원천봉쇄'이니 동경도와 손발이 맞는다. 하필이면 아베 총리와 고이케 지사가 TV 화면에 나란히 나와서 그런 퍼포먼스를 펼친 날에 '원천봉쇄'의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나리타 공항에서 방역이 뚫리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에 대해 시차 계산을 잘못했다나, 어쨌다나 공항에서 하는 말도 재미있다. 요새 일본에서 코로나 19 대책을 보고 있으면 정치가들이 하고 있는 게 솔직히 좀 재미있다. 코로나 19에 대한 지원책으로 현금 5만 엔씩 나눠준다는 안이 있다. 고정자산세 경감에 중소기업 지원책도 있다. 관광과 소비를 환기시켜서 지방 경제를 지원한다고 '관광'과 '외식'에 쓰는 '상품권'을 배부한다는 말도 있었다. 어제 아는 친구의 페북에 올린 글이 "일본은 웃으며 침몰해간다. 와규를 먹으면서"라고 해서 의미를 잘 몰랐다. 자민당에서 지원책으로 외국 관광객이 오지 않아 남아돌아가는 고급 식자재인 '와규(한우?)'와 생선 소비를 위해 '생선'을 구입하는 '상품권'을 배부하는 안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와규'나 '생선'보다 '과일'이 좋다. '과일'을 차별하지 말고 '와규'와 '생선'을 준다면 '과일'도 주길 바란다. 일본 정부는 어쩌면 이렇게 기특한(?) 발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19로 모두가 우울한 기분이니까, 일본 정부에서 웃음을 선물하려고 나름 노력한 결과라고 본다. 단지, 그런 웃음을 주는 정책이 너무 많은 돈이 든다는 게 함정이다. 거대한 함정!
일본에서 웃음을 선사하는 정치가로 아베 총리를 빼면 섭섭하다. 아베 총리와 부인도 세트로 일본 사람들의 웃음, 쓴웃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다는 걸 평가해야 한다. 총리부터 코로나 19가 심각해져서 국민에게는 이벤트와 모임을 자제하라면서 자신은 최고급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회식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지금 동경에 벚꽃이 만발해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꽃구경을 나갔다고 오늘부터 신주쿠교엔은 폐쇄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 총리 부인이 셀럽들과 꽃놀이 파티를 즐기고 기념 촬영한 사진이 SNS에 돌아다녀서 야당에서 추궁했다. 총리가 "부인의 꽃놀이는 공원이 아니라 유명 레스토랑으로, 기념사진은 그 레스토랑 부지 내에 있는 벚꽃나무 아래서 찍은 것이라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고 질문하라"라고 했다. 이게 총리가 당당하게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서 질문하라고 할 수 있는 사안인 모양이다.
거물 코미디언 시무라 켄은 위급상황까지 갔다가 현재도 안심할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 야구선수도 감염이 확인되었다. 한신 타이거스의 후지나미 투수와 동료 두 명이 PCR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와서 격리되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유명인이 감염되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어제 항상 가는 마트에서 사재기 광풍의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하룻밤 자고나서 어제 내가 본 게 현실이었나? 다른 마트에도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오후가 되어 길을 나섰다. 집에서 나와 큰 역으로 가는 길에 사람이 없다. 15분 정도 걷는 사이에 마주친 사람은 딱 한 명이다. 거리 풍경이 낯설게 보일 정도로 한산한 걸 넘어섰다. 출퇴근 시 들리는 큰 역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가장 크고 사람이 많이 가는 마트에 갔다. 어제는 밖에서만 봐도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오늘은 작정하고 보러 갔다. 평소에 내가 도는 코스대로 돌았다. 입구에 야채와 과일이 꽤 많이 있었다. 살짝 비쌌지만 물건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건은 있는데 사람이 적었다. 팽이버섯과 시메지를 두 봉지씩 넣고 2층으로 올라갔다. 식빵을 두 봉지 사고 과자를 몇 개 샀다. 계란도 많아서 봤더니 가격이 좀 비싸다. 보통 내가 사는 가격이 144 엔이다. 그 계란이 189 엔과 199엔이 가장 싼 것이었다. 50 엔 정도 올랐으면 가격이 많이 오른 거다. 계란을 사지 않았다. 과자를 고를 때 일하는 사람이 아는 사람과 수다 떠는 걸 들었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까지 난리가 난리가 아니었어. 잔업도 하고 정말 피곤했다"라고 한다. 어제 내가 밖에서 느낀 게 맞는구나. 계산대에 왔더니 정말로 사람이 적다. 계산하려고 줄 선 사람이 딱 두 명이다. 지금까지 10년 이상 같은 마트에 다녔는데 이렇게 사람이 적은 것은 처음 봤다. 계산하는데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뭔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벌써 '외출 자제'하고 있다.
두 번째는 샐러리맨과 많은 쇼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중간대 가격의 마트에 들렀다. 라면이 많이 빠졌지만, 다른 것들은 빠진 인상이 없이 물건이 좀 적지만 있었다. 그래서 어제 물건이 많이 빠져도 재고로 보충해서 물건이 많구나 하고 있었다. 손님보다 점원이 더 많았다. 벚꽃 구경을 살짝 하려고 했더니 비가 올 것 같았다. 재빨리 일찍 꽃이 폈다가 강풍에 꽃이 지고 있는 짧은 코스를 돌고 집에 왔다. 짐을 놓고 큰 역과는 반대편에 있는 야채 무인판매와 어제 갔던 마트를 보기로 했다. 야채 무인판매에 가서 금귤을 한 봉지 샀다. 다른 야채는 살만한 것이 없었다.
어제 갔던 마트에 갔다. 어제보다 물건이 채워져 있었지만 물건이 빠진 것이 많았다. 가만히 봤더니 물건을 채우는 족족 사람들이 사고 있었다. 먼저 갔던 마트 두 군데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도 어제보다 사람이 훨씬 적었지만 재빠른 동작은 어제와 같았다. 보통 때 보면 일본 사람들이 결정장애로 보일 정도로 느리게 물건을 고른다. 비상시에는 결정장애가 없어지는 모양이다. 생선은 여전히 많은데 신선한 것이 아니라, 냉동과 항상 있는 연어 종류가 많다. 나는 계란이 충분히 있을 걸로 봤는데 가격이 두 배나 되는 비싼 계란이 두 개 남았는데, 그것마저도 눈 앞에서 사라졌다. 먼저 갔던 마트에서 사는 게 좋았다. 계란이 아예 없다. 라면이 있는 곳에 갔더니 신라면이 더 많아져서 남았다. 어제는 일본 라면도 매운맛이 있더니 다 팔렸다. 신라면 사진 옆에 있는 것은 냉면으로 단가가 좀 비싸고 아직 먹을 계절이 아니다. 마침, 커플이 와서 하는 말이 "정말로 신라면만 남았네, 난 신라면 괜찮은데" 하면서 남자가 허세를 떤다. 아마, 다른 라면을 다 사도 신라면만은 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말투다. 작년 태풍 때, 사재기로 다른 라면이 다 팔리고 신라면만 남은 걸 맛이 자극적이라서 남았지, 한국 라면이어서 남은게 아니라고 했다. 아니다, '혐한'이어서 한국 라면의 대명사 신라면이 남은 거다. 여자가 남은 게 얼마 없는 일본 라면을 잽싸게 챙긴다. 말로는 "신라면 괜찮은데" 하지만 사지 않는 것이 일본 스타일?
내가 산 것은 요리용 술이 다 떨어져서 한 병 사고 카레 루 하나, 생만두가 세 개 남았는데 하나 샀다. 마트를 나오면서 마트 입구에 종이에 써서 붙인 걸 사진 찍었다. 처음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개점 시간에 마스크가 없습니다. 종이류가 없습니다. 쌀도 없습니다. 사재기를 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읽고 현실이 어떻다는 걸 조금 짐작하고 말았다. 친한 이웃이 개점 시간에 가서 사라는 말을 했지만 지금은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마트 입구에 쓴 내용을 보고 갑자기 현타가 온다고 할까, 급격히 당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마트에서 나와 강을 건너 길쭉한 공원에서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벚꽃을 봤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벚꽃 나무옆, 등나무 아래 의자에 배낭을 놓고 누웠다. 정신이 완전히 나간 것은 아니다. 그냥 의자에 널브러졌다. 하필이면 가까이에 대학생 코러스를 연습하는 아이들이 네 명 왔다. 내 후배일지도 모르고 강의에서 만날 학생인지도 모른다. 공원에서 널브러졌던 이상한 아줌마가 강의에 나타나면 학생들도 놀랄 것이다. 힘이 빠져 누워있으면서도 어제 본 대구시장처럼 조신하게 앞으로 손깍지를 끼려고 했다. 손깍지를 껴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 풀려서 아래로 처진다. 대구시장은 기절해서도 됐는데 나는 기절하지 않았는데 손깍지를 낄 수가 없었다. 대신에 트림이 자꾸 나왔다, 그런 동안 코러스 연습을 하는 아이들은 눈치 없게 계속 노래를 몇 곡이나 부르고 있었다. 상상하면 정말로 이상한 장면이다. 별 볼 일 없는 강가의 작고 한적한 공원에 벚꽃이 핀 나무 옆에 아줌마가 널브러져 있고 꼭 그 타이밍에 맞춘 듯이 코러스 연습을 하는 대학생들이 바로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는 모양이다.
공원에서 널브러져 쉬다가 숨을 돌리고 달래를 좀 뽑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벚꽃 나무를 보고 머위도 몇 개 뜯었다. 단지 바로 옆 작은 공원에 들러서 그네를 좀 탔다. 내가 처한 설명하기 어려운 괴이한 상황을 그네를 타면 좀 털어낼 수 있을까?
오늘 주변을 돌면서 본 상황에 의하면 사람들은 언제 '비상사태 선언'을 해도 될 정도로 준비가 되었다. 정치가들이 '비상사태 선언'을 한다고 흔들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초중고는 학교를 재개한다고 한다. 완전히 엇갈린 사인을 보내고 있다. '비상사태 선언'을 하게 되면 21일 정도라고 한다. '외출 자제'나 '비상사태 선언'도 좋다. 그런데, 정치가들은 그 '후폭풍'을 감안하고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시민을 억압하는 걸로 코로나 19의 감염 확대 방지가 될까? 일본 정부에서는 방역과 과학적인 견지에서 판단하지 않고 오직 '정치적인 판단'으로 코로나 19에 접근하고 시민을 억압하고 있다. 일본은 코로나 19를 '정치적'으로 물리칠 수 있을까?
식료품이 동이난 매대를 오늘도 찍었다. 마지막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벚꽃 나무가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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