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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코로나 19

일본, 코로나 19 다양한 차별

NHK에 따르면 4월 24일 동경도의 코로나 19 신규 감염자는 161명으로 누계가 3,733명이다. 신규 감염자 47%인 75명의 감염 경로를 모른다고 한다. 감염 경로는 모르는 감염자 비율이 50% 이하로 내려온 것은 처음이다. 사망자 누계가 93명으로 사망률은 2.5%가 된다. 그런데 동경도의 PCR 검사가 늘지 않아서 신규 감염자 숫자만으로 추이를 읽기가 어렵다. 일본의 코로나 19 감염자에 의료관계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동경도에서는 14%인 454명이 병원의 환자와 의사, 간호사이다. 병원의 '집단 감염'으로 인해 '의료 붕괴'가 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동경도만이 아니라, 일본 전국이 비슷한 경향이 아닐까 싶다. 일본 전국에서 신규 감염자 434명으로 크루즈선을 포함한 누계가 13,575명이다. 사망자 누계는 358명이다. 같은 날 한국은 신규 감염자 6명으로 누계가 10,708명, 사망자 누계가 240명이다. 

 

아베노마스크는 문제가 많아서 배부를 중지하고 회수했다고 한다. 나중에 재배부 한다고 한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중지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언젠가 오기는 오는데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모양이다. 코앞까지 왔다는데 납치를 당했나? 마스크를 살 수가 없다고 배부하기로 해놓고 배부 시기를 알 수가 없다니, 참 대단하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역량은 아베노마스크 하나만으로 알 수 있다. 얼마나 주목을 받고 있는지 지속적인 화제성이라는 의미에서 아베노마스크는 완전 히트작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우체국까지 왔다는 마스크를 회수해서 재배부 한다면 그 비용은 어떻게 되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고 했는데, 세금 낭비라는 의미에서도 아베 총리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예, 야심이 있는 감독이라면 영화가 한 편 탄생하겠다. 

 

어제 사망한 오카에 구미코에 대해서 전 동경도지사 마쓰조에 씨가 "발열이 있고 빨리 PCR 검사를 받았다면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료 붕괴'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PCR 검사를 억제한 정부의 책임"이라고 했다가 댓글로 욕을 먹고 있다. 비슷한 내용을 부드럽게 표현하면서 정부의 책임이나 '의료 붕괴'를 언급하지 않은 오카다 교수의 발언에는 댓글이 냉정히 현재 PCR 검사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많다는 게 대조적이다. 발언 내용이 아니라, 인물에 따라서 반응이 확연히 다르다.

 

그런 한편, 코로나 19 감염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인 동경도와 오사카부의 구급환자를 병원에서 수용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었다. 동경도는 3월에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군데 이상에서 구급환자 33%를 수용을 거부당했다. 4월 1-18일은 작년의 4배나 구급환자 수용을 거부당했다. 건수가 1390건이나 되면 100군데에서 수용을 거부당한 케이스도 있다. '발열'이라서 코로나 19 감염 환자로 의심했기 때문이다. 오사카부는 4월 1-10일 사이 작년에 비해 19.5%가 증가한 233건이 5군데 이상의 병원에서 구급환자 수용을 거부당했다. 코로나 19 감염 의심 환자에 대한 '차별'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코로나 19에 감염 증상이 있어도 PCR 검사를 받기가 힘들기 때문에 증상이 나빠져서 구급차에 실려가면 확실히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나가사키 항의 크루즈선 승무원의 코로나 19 감염도 배로 증가해서 오늘 감염자가 43명이 늘어 합계 91명이 되었다고 한다. 지난번 요코하마항의 크루즈선의 교훈을 살려서 감염자가 확대되지 않게 빠른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 

 

동경도 처음으로 에도가와구에서 드라이브 스루 검사 방식을 선보이고 사이타마현에서는 가와구치시, 고시가야시 등 세 군데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도입하고 PCR 검사센터를 20군데 이달 중으로 설치한다고 밝혔다. PCR 검사를 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하고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 뉴스에 나라현에서 경증자를 숙박시설에서 요양을 시키기 위한 리허설이 보도진에게 공개된 것이 있었다. 일본에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발견이 많다.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경증환자를 격리했지만 리허설까지 했다는 걸 들은 적이 없다. 일본에서는 빈틈없이 치밀하게 리허설까지 보도진에게 공개하는 준비를 했다. 리허설을 위한 리허설도 했을 것이다. 아주 치밀하게 준비된 모습까지 보이는데 막상 현실적으로는 허술하고 구멍이 많다. 내용적으로 보면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의료 붕괴', 많은 의료진의 감염, 구급환자 수용 거부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코로나 19 사태에서 일본 사회의 네거티브한 특징을 드러내는 지속적으로 보인다. 오사카부 시의원이 페이스북에 "감염자는 고령자에게 살인귀로 보인다"는 투고를 했다가 문제가 되어 오늘 사죄했다. 감염자가 '범죄자'가 아닌 것을 마치 '범죄자'처럼 공직에 있는 인물이 투고했다. '감염자'에 대해 '차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입장이 정반대로 '차별'을 선동했다. 그런 선동이 없어도 일본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감염자'를 '차별'한다(https://headlines.yahoo.co.jp/hl?a=20200422-00000028-asahi-soci ). 미에현에서 '감염자'의 집에 투석으로 유리창이 깨지고 낙서를 했다. 사회에서 '감염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감염된 사실을 밝히기 어렵게 한다. 그래서 증상이 있어도 검사를 받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검사를 받는 자체가 심리적 부담이 되고 경증이면 그냥 일을 계속해서 감염을 확대시키는 결과가 되고 있다. 도쿠시마현에서는 감염자나 그 가족, 외부에서 온 넘버의 차량에 해코지를 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폭언을 하고' '차에 상처를 주는' 외부에서 오는 사람에 대해 적대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때 후쿠시마 넘버의 차량을 주변 지역에서 주차하지 못하게 '차별'했다고 한다. 나와 친한 학생 아버지는 라면을 아주 좋아하는데, 후쿠시마 넘버라고 라면집에서 입점 거부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후쿠시마에서도 방사능 피해가 있는 지역과 가벼운 지역이 있다. 라면집만이 아니라, 후쿠시마에서 외지로 피난을 간 사람과 학생들도 '차별'을 당하는 일이 허다했다. 일본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지만 후쿠시마 사람들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감염자'에게 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공동체와 사회를 파괴하는 짓이다.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눈부시게 맑은 날씨였다. 오후가 되면서 흐려지고 바람도 불어서 쌀쌀해졌다. 오늘은 오전과 낮에 온라인으로 미팅이 둘 있었고 오후에는 온라인 강의를 위한 강습회가 있었다. 온라인 미팅도 온라인 강의를 위해 도입한 시스템에 대한 해설과 사용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오전 미팅은 직원이 설명했다. 참가 인원이 많지 않아서 나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켜지 않고 봤다. 직원에게 동영상으로 찍어서 배부를 하면 더 좋겠다는 댓글을 썼다. 다른 의견도 제시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회의 참가인원도 적고 시스템이 서로 소통하면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한 걸 소개하는데 정작 물음이나 의견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면서 서로 소통을 하라고 한다. 어렵다. 그래도 이건 괜찮았다.

 

낮에는 교수가 사용방법을 설명하는데, 수학 문제를 내고 풀라고 10분 이상 아무 말도 없다. 안내하는 방법도 이상한데 수학 문제까지 제시해서 풀어보라니 더욱 황당하다. 나중에 질문을 받는 부분에서 여러 가지 제한이 있어서 자료만 올리면 안 되고 음성도 들어가야 한다는 식이다. 파워포인트에 음성이 들어가면 너무 무거우니까, 유튜브를 만들어서 올리라고 한다. 여성 교수가 유튜브를 만든 적이 없는데 그렇게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것이냐며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그에 대해 안내하던 교수가 여성 교수를 비하하는 말투로 그것도 모르냐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식의 대응이다. 남성 교수가 훨씬 젊다. 교수들 중에는 '컴맹'이 많다. 그걸 보면서 나는 내가 질문을 하지 않길 다행이라고 여겼다. 온라인 강의를 위해 처음 하는 일에 대해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는 미팅에서 공개적으로 비하를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런 대응이 무서워서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을 할 수가 없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닌 엉뚱한 굴욕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다른 여성 교수와 안내하는 교수가 아주 긴 사소한 것에 대해 카메라와 마이크를 켠 상태에서 언제까지나 말하고 있어서 참느라고 정말 힘들었다. 일본에서 회의는 극기훈련이다. 회의에 참가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느껴진다. 얻는 것이 없어도 그 자리에 없으면 의심을 받는다. 성실하게 일하고 있지 않는 걸로, 그래서 회의에 참가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다. 오랜만에 그런 미팅을 해서 정말 피곤해서 낮부터 달달한 과자를 먹었다. 오후에는 지난번 온라인 강습회가 먹통이 되었던 회사여서 긴장했더니 준비한 동영상을 틀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신청하고 접수하고 예고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처음부터 동영상을 보라고 하는 게 좋다. 그래도 여기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다행이다. 강습회 동영상도 확보했다.

 

오늘 발견한 것은 평소에 알던 사람들도 카메라에 얼굴만 비친다는 건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나는 카메라를 켜지 않았지만 남성들은 카메라 앞에서 꽤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카메라에 비친 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무신경한 모습을 화면으로 봐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될 것 같다. 나도 동영상이나 카메라를 사용한 온라인 강의라면 같은 조건이 된다. 이건 지금까지 교실에서 하던 강의와 전혀 다른 세계다. 교실에서는 선생 얼굴만 가까이 보는 일을 지극히 드물다. 그런데 카메라를 사용하면 거의 얼굴에만 집중하게 된다. 탈이라도 써야 하나? 지금까지는 강의를 일인 연극으로 생각하면서 무대화장을 하고 무대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가서 했다. 카메라가 아닌 직관 중심이다. 보는 눈이 카메라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