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맑고 건조한 날씨였다. 겨울에 기온이 높지 않아도 날씨가 맑으면 햇살이 들어와 낮에는 따뜻하게 지낸다. 오늘은 오후에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좀 추워졌다.
오늘도 집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지난 연말, 섣달 그믐날에 있었던 국회운영위원회에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출석해서 야당, 주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공방이 너무 재미있어서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밤 12시 넘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말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하도 '김태우'를 연발해서 국회운영위원회가 열린 목적이 '김태우'를 지키기 위해 온 국민의 관심을 동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몰랐지만, '김태우'가 한국을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하는 '열사'라도 되는 줄 알았다. 설사, '열사'라고 해도 온 국민의 관심을 동원할 정도의 사안이 아니었다. 그런 걸 '국민'을 연발하면서 '김태우'를 위해서 자신들을 불사르는 열정을 보이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보면서 '김태우'를 보호하기 위한 정열의 1%라도 국민을 위했다면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할텐데 하면서 아쉬워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아주 잘 했다. 자신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이며 선전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발언은 전국민을 향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향한 것으로, 지지자들에게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의 논리정연한 답변은 들리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가들이 하는 말이 논리적이든 아니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면 다 맞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안심하면 안된다. 같은 화면을 보고 들어도 보이고 들리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날 조국 민정수석이 출석한 것은 '김용균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문재인대통령의 의지라고 했다. '김용균'이 자신을 불러냈다고 했다. '김용균'의 죽음은 참으로 가슴아프고 슬픈 일이다. 한편, 그의 죽음으로 문재인대통령, 조국 민정수석, 국회가 움직여 '김용균 법'을 만들어 냈다고도 할 수 있다. '김용균'의 죽음으로 다른 '김용균'들을 살려냈다.
그날 화제에 올랐던 '신재민'이라는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어제 강남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은 현정권의 '비리'를 '폭로'한다는 취지였다. 갑자기 강남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도 생뚱 맞아서, '기획'된 것인 느낌도 물씬 풍겼다. 사는 곳은 고시원에, 오늘 발견된 곳은 모텔이라는 것도 무대장치가 훌륭했다. 나도 나름 높은 직급의 국가공무원을 했었다. 단지 국가공무원을 한 것이 아니라, 전문분야에서 국가를 대표한다는 국제회의에도 몇번이나 출석했고, 국가적인 프로젝트에도 뽑혀서 참가했다. 그래서 그 세계의 '기밀과 비리'도 많이 알고 있지만 그걸 알려서 '공익제보자'가 될 생각이 조금도 없다. 나도 내 몸을 불살라 '공익제보자'가 되야 한다고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소속했던 '조직'을 내 몸을 희생해서 잘못된 점을 알려야 할 정도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떠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들의 '비리'는 시간이 지나면 '사건'이 되어 수면위에 떠올라 알려지게 된다. 물론, 사건이 되지 않아서 관행처럼 계속되는 '비리'도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런 '비리'는 결국 그들의 목을 졸라서 자멸의 길을 걷는다는 걸 지켜보고 있다. '천벌' 받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이전에 속했던 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지낸다.
고위직 국가공무원이 공무를 수행하면서 취득한 정보를 '공익'을 위해서 '고발'하는 것은 '목숨'을 걸거나, '인생'을 거는 것과 같다. 첫번째 이유로 그야말로 '국가'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익'이 무엇인지 신중히 생각해서 '행동' 해야 한다. '행동' 하기 전에 주변에서 '공익'이라는 것과 '비리'라는 것을 거듭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보이는 것이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떤 것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것이라면 다른 동료들도 '공감'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공감'하는 동료가 나중에 힘이 되어 줄 수도 있다.
신재민에 대해서는 한국의 매스컴과 자유한국당이 '보호'하고 지켜줄 것으로 봤다. 내가 보기에 신문의 메인을 장식할 뉴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메인으로 걸리며 관련기사가 줄줄이 나오는 걸로 봐서 대단한 사건인 인상으로 비춰졌다. 매스컴과 정치가 공조해서 의도적으로 '인상을 조작'하는 것이다. 문재인정권을 공격하고 국가적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 목적으로 보인다. 그는 기자회견까지 하고 판이 너무 커졌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오늘은 자살소동으로 이어져 사건의 전개는 '공익제보'에서 '막장드라마'로 흘러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신재민은 '용감하고 씩씩했다'. 그렇기에 절대로 죽어서는 안된다. 그야말로 '목숨'걸고 '공익제보'를 했다면 살아서 자신이 믿는 '공익'이 무엇인지 증명해야 한다. 그야말로 '공익'이라면 말이다. '막장드라마'가 '인간극장'이 되어야 하겠지.
친구라는 사람이 "학생이 손들고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선생님이 일단 두들겨 패고 본다면 그 교실에서 누가 손을 들고 말을 하려고 할까요"라고 했단다. 미안하지만, 정말로 학생들이 교실에서 손을 들고 발언을 한 것이라면 이 말이 맞다. 하지만, 신재민은 교실에 앉은 미성년인 학생이 아니다. 어려운 행정고시에 합격할 정도로 우수한 청년이다. 신재민으로 인해 매스컴이 동원되고 자유한국당이 지원사격을 하며 '소동'을 일으킨 것은 교실에서 손을 들고 발언하는 레벨이 아니다. 사회적혼란을 가져오며 국가를 뒤흔들고 있는 정도니까, 캐리어로 보면 그정도로 중대한 일을 초래했다는 걸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신재민은 한방에 전국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가 '공익'을 증명하기가 아주 수월해진 것이다. '민변'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그를 지원할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별별 학생들이 다 있다. 겨울방학 직전, 사회학 강의에서 일본의 긴급한 국가적인 문제로 '저출산, 고령화'가 있다. '저출산, 고령화'는 '남녀평등'과 직결된 문제로 보기 때문에 '남녀평등'이 긴급한 과제라고 했다. 학생의 감상문에 "저를 사이코패스라고 할지 모르지만, 솔직히 고령자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고령자를 죽여야 한다고 봅니다"하는 것이 올라왔다. 깜짝 놀랐고 이런 글을 쓴다는 자체가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다음 시간에 그 감상문을 학생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그 학생에게는 "참 용감하게, 솔직하게 썼구나. 이렇게 쓰는게 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하고 왜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는지, 학생들의 반발을 사지 않도록 조곤조곤 설명 할 작정이다. 이 학생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기에 감상문에 쓴 것이다. 학생을 '사이코패스'라고 치부하는 것은 간단하다. 자신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니까. 사이코패스로 살지 말기를 바라기에 강의에서 설득을 하는 것이다.
대학생들 중에는 '정치가'들의 '혐오'발언을 들으면서 '혐오'라는 걸 모르고 추종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가가 '나치'를 숭상한다고 하는 것도 배운다. '정치가'들 처럼 사회적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거침없이 표현한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이 우월한 입장에 있는 증명이라도 되는 것으로 여긴다. 나는 '정치가'는 '권력'이 있으니까, 그런 짓을 하지만, 너희가 같은 걸 하면 '범죄'가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 잘리고 문제가 된다. 그러니 사회적약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정치가'를 본받아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면 안된다. 너네 인생이 망한다고 가르친다. 그런 학생들이 접하는 세계에서는 '혐오'가 당연한 상식과 교양이 되어 있기에 그런데서 배운다. 학생들의 비뚤어진 가치관을 지지하는 사회가 있는 것이다. '혐오'를 사회가, '정치가'들이 부추기고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들 표현이 문제가 된다는 걸 모르는게 아니다. 문제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없으니까 우월감이라는 방패를 써서 방패 뒤로 '도피'한다. '도피'한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다. 우선 순간적으로 눈 앞의 일에 자신이 없으니까, '도피'하고 싶다.
나에게는 신재민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 '혐오'발언을 하거나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학생과 겹쳐 보인다. 학생들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아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에 그야말로 교실에서 선생에게 맞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듣는 것으로 끝난다.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아 사회에 나가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책임능력이 있는 성인이 된 그들의 몫이다. 미안하지만, 선생인 나의 몫이 아니다. 선생이라고 해서 학생들 인생까지 책임을 질 수가 없다. 하지만, 마음이 아플 것이다. 설사 내 학생이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실수를 할 수가 있다. 잘못된 걸 알았으면 빨리 수습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것 또한 용기있는 행동이다.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김용균'은 죽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을 살렸다. 신재민은 살아서 자신이 목숨을 걸었던 '공익'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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