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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미소지니와 제노포비아

일본, 일하는 여성과 죄악감 1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맑았다가 오후가 되면서 흐려서 저녁에는 안개가 낀 것 같은 시야가 흐린 날씨였다. 주말에는 쉬고 평일에 못 먹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청소를 하면서 지낸다. 오늘도 주말이지만 할 일이 있어서 주말에 하는 청소와 빨래를 하면서도 마음은 일에 가 있었다. 나이를 먹어도 일에 따라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며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오늘까지 했던 일이 그렇다. 오늘 밤까지 일을 마치고 친구에게 보내기로 했는데, 오후에 청소를 마치고 다시 일을 하려고 했더니 허리가 아파왔다. 스트레스로 허리가 망가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일을 강제로 마쳤다. 내 몸은 스트레스에 약한 편이라, 지금 학기가 시작된 마당에 허리가 나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메일로 일한 것을 보내고 아는 이웃네 강아지 산책을 나갔다. 허리가 아프기 전에 걷기 운동을 해서 허리가 나가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허리가 몇 번이나 나갔던 경험이 있어서 허리를 잘 모셔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요새 다른 일을 하느라고 일에도 집중을 하지 못하면서 블로그를 쓰지도 못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기 전에 블로그에 써야지. 반납했다가 다시 빌리면 책에 표시를 했던 곳을 다 떼고 다시 표시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책은 이미 한 번은 반납했다가 빌린 것이라, 그런 작업을 한 번 했다. 사진을 찍는 방법도 있는데, 찍을 것이 너무 많다. 사진을 찍어 두면 화면에서 자료를 보는 것이 불편해서 결국 쓰지 않고 남기는 일이 다반사다.

 

 

저자가 일본에서 1985년 제정되어 1986년부터 시행한 '남녀 고용 기회 균등법(줄여서 균등법)' 세대로 남성과 동등하다는 '종합직'으로 아사히신문에 취직해서 그 계열인 AERA에서 편집장까지 지낸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 저자가 대학을 졸업한 것은 일본 버블경기가 절정인 시기인 1989년이다. 나는 1990년에 졸업했으니까, 같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같은 세대 여성으로서 공감이 가는 점이 많았다. 

 

첫 도입에 2018년 4월에 TV아사히 여성 기자가 재무성(옛날 대장성의 재편으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들어가는 곳, 그러고 보니 대장성이 붕괴된 것도 직원이 성적인 접대를 받은 것이 탄로 나서 기강이 무너진 것이 원인이었다!)의 실질적 톱 관료인 사무차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간지 기사를 통해서 고발했다. 재무성에서는 성추행을 인정하고 사죄했지만, 사무차관 본인은 마지막까지 성추행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기사를 낸 주간지를 고소하겠다고 주장했다. 취재를 했더니, 사무차관의 성희롱은 일상적인 것으로 여성 기자들 사이에서는 요주의 인물로 유명했다. 그러나, 고발한 여성 기자와 상담을 한 상사, 재무성에 항의한 TV 아사히가 비판을 당했다. 여성 기자가 권위 있는 남성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왜 혼자 만났냐? 녹음을 왜 했느냐? (남성 기자에게는 당연한) 취재 수법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아소 타로 재무상은 "꽃뱀일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거나, "성희롱죄라는 것은 없다"는 유명한 망언을 남겼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매스컴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관심이 모아졌다. 그래서 저자가 편집장을 하고 있던 경제지에서 매스컴에서 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질문지를 돌려 조사했다. 매스컴에서 일하는 여성 80%이상이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라고 했다. 문제는 성희롱을 당한 30%만 상담을 하거나, 고발을 했고 나머지 70%는 상담조차 하질 못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일본에서 매스컴에서 일하는 남성과 여성은 엘리트들이다. 젊은 여성기자에게 물었더니 "이런 성희롱을 당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라"고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취재를 했더니, 결국 피해자가 퇴사를 당한 심각한 케이스도 있었다. 

 

'균등법'이라는 법률이 시행되어 30년이나 지났지만, 일본에서 여성들이 일하는 환경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균등법'세대가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성희롱'이라는 말이 없었다. 노골적인 '성희롱'을 당해도 고발할 생각조차 할 수가 없어, 피해자인 여성이 입을 다물고 자신을 회사나 사회에 무리하게 순응하려고 해왔다. 그 시대에 목소리를 낼 수가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기억하기에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일정도로 회사를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는 "그러니까 여자는 쓸모가 없다"는 말이 나올까, 두려웠을 것이다. '성희롱'을 당하는 것은 피해자가 몸가짐이 조신하지 않아서 당하는 것이라고 욕을 먹을 때였다.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다고도 했다. 나는 그런 기사를 읽으면서 '성희롱'을 당하고 싶어서 유혹하는 여성이 있을까? 만약에 있다면 같은 여성으로서 이해 불가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저자가 AERA에서 결혼을 특집으로 했을 때, 미혼화와 만혼화가 진행하는 원인은 '경제적 이유'라고 했지만, 정말로 그럴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왜냐햐면 독자층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집으로 '결혼은 가성비가 나쁘다'라고 했던 기사에서 40대 여성이 "연애와 결혼은 성과가 확실하지 않고 가성비가 나쁘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런 관점도 있구나.

 

저자가 일하던 AERA 편집부에는 30 명의 편집부원이 있었는데, 20여명이 여성에 10명이 워킹맘이었다고 한다. 매주 심야에 마감이 있는 주간지를 제작하는 직장에 이렇게 워킹맘이 있는 편집부는 당시 드물었을 것이다. 여성이 일하기 좋고, 결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잡지 자체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워킹맘이 힘든 것은 예정을 세울 수 없다는 예정이 변한다는 일이다. 급한 출장이나, 밤에 일하는 것은 부담이 아주 크다. 그러나, 뉴스를 쫗다보면 갑자기 한밤중에 기자회견이 있을 수 있고, 지방에 사건이 나면 출장 가야 한다. 그래서, 주간지를 만드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어차피 주간지니까, 매일 일어나는 뉴스를 쫗기에는 일간지에 비해 한계가 있다. 특정 기사에 대해 심층취재와 분석을 하는 것으로 바꿨다. 

 

AERA는 (여성지임에도 불구하고) 1988년 창간이래, 역대 편집장은 남성이었다. 12번째로, 여성으로서 처음 편집장이 되었다. 저자가 AERA 편집장이 되기 6개월전에 같은 계열 '주간 아사히'에서도 1살 위 여성 선배가 편집장으로 취임했다. 여성 편집장을 2명이나 탄생시켰다고 아사히에서 신문에 전면광고를 낼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저자가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한 1989년에 기자 동기는 약 80명 그중 여성 기자는 14명이었다. 당시, 현청담당 여성 기자는 아사히와 마이니치 신문 정도였다. 남성 기자밖에 없는 기자클럽에 들어가면 "뭐야, 저 젊은 아가씨"라는 시선으로 주목을 받았다. 남성들은 기다리다가 졸리면 소파에서 잘 수도 있고 다른 신문사 기자와 장기라도 둘 수 있었지만, 여성들은 있을 곳이 없었다. 지국에 전화가 와서 받으면 "기자를 바꿔달라" 제가 기자입니다 하면, "남자 기자를 바꿔달라"고 했던 시대였다.

 

AERA에 옮겨서 곧 '멋있는 전업주부로 사는 것'을 기사로 썼다. 같은 세대 '종합직'이었던 여성이 왜 퇴직했는지 알고 싶어서 취재했다. 인상에 남는 것은 큰 시중은행에 '종합직'으로 취직했던 대학 1년 선배였다. 처음에 지점에서 영업을 담당했는데, 매일 귀가는 마지막 전철, 다행히 집에 살아서 아침이 되면 피곤한 몸을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역에 와서 출근하면서 일을 했다. 세탁이나 식사도 엄마가 해줬다. 엄마가 전업주부였기에 딸이 아들처럼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에게 의존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의문을 느껴, 결혼과 동시에 퇴직한다. 그 선배는 대학 때 성적이 우수한 걸로 유명했고 리더 역할을 해서 일을 계속하리라고 봤는데, 전업주부가 된 것이다. 동경대학을 졸업해서 '종합직'으로 취직해도 결혼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었다. 

 

'균등법'이 시행되어 30년이 지나서야, 여성이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원인이 '장시간 노동'이라는 직장환경 탓이라는 걸 정부가 겨우 인식했다. 능력있는 여성들이 결혼해서도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남성과 똑같은 조건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은 무리다. 남성들은 집단적으로 '사원료'라는 곳에 살리면서 식사까지 제공하는 식으로 거의 '군대'와 같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일을 하지만, 같이 생활할 수는 없다. 여성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제도와 직장환경'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 87-88%로 압도적이었다. 다음은 '근무시간이 유연할 것'이 정규직은 50%에 비정규직은 60%였다. 비슷한 것으로 '잔업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 정규직 47%, 비정규직 42%였다. 그다음에 오는 것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이 정규직, 비정규직 여성과 정규직 남성까지 같은 39%였다. 결국, 여성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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